오는 4월 4일이면 97주년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 제28회 추모제 및 기념식이 열린다. 국권을 송두리째 일제에 빼앗기고 암울했던 시기, 우리고장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대호지, 천의장터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고종 장례식에 참석했던 지역 유생들은 서울에서 3.1만세 운동을 목격하고 우리지역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은밀히 소지해 고향에 돌아와 거사를 모의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민과 관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합심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면장 중심의 직원과 지역 유지들과의 긴밀한 협조로 4월 4일 천의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도로를 보수한다는 면장 명의의 공문을 각 마을로 발송해 대형 태극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 등사기로 독립선언문을 제작, 배포했으며 특히 애국가를 창작(경성복심법원 판결문 참조)하며 제창할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했다.
거사 당일 대호지면사무소 광장에 6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당시 이인정 면장은 오늘 모임이 우리나라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니 긴장이 고조되면서 만세운동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애국가와 선서문 제창에 이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30척 높이의 대나무에 매달린 대형 태극기가 떠올랐다. 이를 앞세우고 약 7km에 이르는 길을 행진하며 천의장터를 도착하니 시위 군중은 어느새 8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후 장꾼까지 합세하며 시위대는 1000여 명이 됐다. 그간 저들이 탄압에 억눌리고 숨죽이며 살았던 것이 폭발하듯 만세 함성은 천지를 진동했다. 이때 천의 주재소 왜경들이 나타나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출동했지만 시위대는 오히려 왜경을 붙잡아 대열에 합류시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길 종용했다. 당지 왜경들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근 당진경찰서의 응원 순사가 당도해 시위대를 저지하려 권총을 발사했다.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하니 일순 시위대는 성난 노도가 됐으며 이에 왜경은 도망치기 바빴다. 당시 천의 일경 주재소에 있던 문서와 기물은 모두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잠시나마 치안 공백 상태가 됐다. 조선 파견 군사령관이 일본 육군 대신 앞으로 보낸 전통문에서도 ‘전보, 대정 8년 4월 4일 천의 주재소에 폭민 내습하여 순사 및 순사보 등이 중상을 입고 일부 행방불명되고 주재소가 파괴돼 동주재소가 폐쇄 됐음’이라 적혀 있다. 그날의 항쟁이 얼마나 격렬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사 후 여파는 혹독했다. 다음날 출동한 헌병대의 만행은 너무나 잔인무도했다. 면내 청장년들을 닥치는 대로 구속, 난타하며 주모자 색출에 혈안이 됐다. 후일 기록으로 밝혀진 것으로도 4.4항쟁으로 인해 구속된 분이 200명에 달하고 현장 학살 1명, 옥중 순국 3명, 징역형 35명, 태형이 89명에 이른다고 기록됐다. 우리 선조들은 이유 없이 잡혀가 모진 구타와 고문으로 평생을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벽촌 오지에 불과했던 이 지역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일제는 탄압과 감시의 눈초리를 더하는 한편 대호지와 정미에 타 지역보다 5~6년 앞서 보통학교를 세워 저들의 식민교육에 주력했다. 또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모질게 탄압했다. 내나라 내 강토를 찾고자 거사를 일으켰다가 저들의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했으니 애국지사들의 울분이 어떠했으랴?
어디 그뿐인가. 왜놈들의 감시와 탄압 속에 고향을 등지고 유리걸식 하거나 정처 없이 떠돌다가 자녀 교육은 물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해 자녀를 두지도 못했으니 <서훈신청> 할 사람도 없고 또 그런 절차를 알지도 못해 서훈 대상자 중 30여 분 이상이 미서훈자로 남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뜻을 높이 기리고자 위패가 모셔진 창의사가 낡고 협소해 제향을 올리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참으로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던 차에 당진시에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며 기본 계획을 마련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부디 후대까지 선열들의 애국 애족 정신이 이어질 현충시설이 될 수 있도록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5000년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외침에도 끄내 지켜냈던 민족 자존의식이 면면히 전해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보존하는 길은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목숨을 산화하면서 지키려했던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애국 애족 정신을 높이 받들어 부강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