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대호지면 독립만세 현장에 서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만감이 교차하였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이곳에서 지독한 일경들의 감시를 피해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며 목이 터져라 외쳤을 그날의 함성이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 당시 상황은 긴박했을 것이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거사계획을 세우고 극비리에 서로 연락하고 접촉하면서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여러 날을 일경의 감시를 피해 밤을 새워 대형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천여 장의 애국가를 등사하고 비밀리에 배부하며 숨가쁜 하루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거사 전날 밤 긴장과 초조로 참으로 길고 긴 밤을 보냈을 것이다.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사지(死地)를 향해 모였을 것이다. 오전 9시 대호지 광장에는 6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30자 높이의 대나무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이인정 면장님의 조국독립의 당위성과 민족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는 연설이 있었고 이어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남주원 열사의 숭고한 ‘조선독립선언서’의 낭독이 있었을 것이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에 고(告)하야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서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고하야 민족자존(民族自尊)의 정권(正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그리고 애국가를 눈물로 목이 터져라 부르고 행동총책인 송재만 열사의 선서와 이대하, 한운석 열사 등의 독립의지를 불태우는 웅변으로 열기는 고조되었고, 행진하는 시위대의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천의 장터를 뒤흔들었을 것이다. 드디어 일경들이 들이닥치고 비무장 시위 군중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을 발사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 흘리며 쓰러지면서도 입에서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하니 그 광경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금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 고장에서도 많은 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항쟁에 참여하여 청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으니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진을 고향으로 둔 나로서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며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참으로 분개치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극일(克日)의 기개(氣槪)를 가지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가 되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