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기고] 라는 명칭, 이대로 괜찮은걸까
…온 물이 합류하는 집수구역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방의 개념이 들고 나는 바닷물을 차단한 방조제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내수면을 두고 이를 삽교호라고 하거나 삽교천 방조제니 삽교천 관광지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건너편에 여…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11건 · '기고 나는' · 2019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19.12.09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온 물이 합류하는 집수구역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방의 개념이 들고 나는 바닷물을 차단한 방조제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내수면을 두고 이를 삽교호라고 하거나 삽교천 방조제니 삽교천 관광지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건너편에 여…
2019.11.04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아버지와 눈이 맞아 내가 생겼다고 우리 엄마는 화만 나면 나를 때렸다. 나는 그 당시 우리 엄마 화풀이 대상이었다. 나를 때리면서 네년 때문에 내 팔자가 이 모양이라며 나를 때렸다. 그렇게 그렇게 엄마의 북이 되어 살았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동생에…
2019.10.21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요금 몇십 원 때문에 실랑이하고, 주차 요금을 주지 않고 슬그머니 달아 나는 차들 앞에 호루라기 불며 쫓아다니기 바빴다. 길바닥에 동정 몇 닢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더러는 괜스레 멱살을 잡으며 트집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침 9시부터 늦…
2019.09.2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들리고 바람과 비에 젖으면서도 꽃잎을 피웠나니, 우리의 삶도 젖지 않고 나는 삶은 없지만, 꽃잎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에게도, 개인에게도,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은 있다. 인생사 ‘생로병사, 희노애락’이라 하였다. 사람은 태어나 늙고 병들고…
2019.07.14 · 문화·교육 · 당진시대
… 것 같다. 비가 와서 우리는 박물관에 갔다. 그곳 작품들은 황용산에서 나는 흙과 돌로 그린 그림인데 화려하진 않았지만 1963년생인 이군성 작가의 작품을 보니 천재적인 기술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림에 대해 무지하지만 유리잔도와 대협곡에서 내려는 물줄…
2019.06.22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이 되고 있다. 성장통은 3~12세 사이의 성장기 아동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하지 통증으로, 주로 종아리, 허벅지 또는 무릎 부위에 발생한다. 성장통은 특별한 치료 없이 괜찮아지며, 만약 통증이 심하다면 전신목욕, 마사지 등으로 통증을 완화시켜줄 수 …
2019.06.14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리하고 싶다. 바다의 향기가 내 몸과 영혼에 퍼지고 온 마을을 덮을 때 나는 참 행복했노라 말하고 싶다. 그 꽃이 질 때면 나도 지겠지…. - 휴스턴에서 반촌사람 찰리가 쓰다 >> 최영기 씨는 - 1961년 생 경북 안동 출신 - 전 휴스턴한안회 이사…
2019.04.26 · 환경·안전 · 당진시대
혹시 나는 하찮은 말 한마디였을지 몰라도 상대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때는 별 것 아닌 칭찬 한마디가 상대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경우가 있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
2019.04.19 · 환경·안전 · 당진시대
…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당진 땅 찾기 피켓 시위 현장을 방문했다. 다음 기고 글은 현장을 방문한 뒤 허수정·이서은 학생이 소감을 전한 글이다. [당진땅 찾기 특별기고] 우리는 당진시민이다 허수정 신평중3 저는 헌법재판소 피켓시위를 견학하기 전까지 당진…
2019.04.05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진국들은 이를 선점하기 위해 투자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문화사업 투자에 대한 소견의 글을 쓰려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하드웨어 사업에 익숙한 사회다. 즉 5000만 원의 사업비로 교량 또는 도로 포장을 하듯 문화 사업에 투자를 하…
2019.01.07 · 인물·동정 · 박경미
…, 자신의 선친께서 당진에 내려온 첫 해에 직접 집을 지었다고 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지금까지 <상록수>의 박동혁 모델이 심재영 씨라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심재영 씨가 농촌운동을 하기 위해 단신으로 당진에 내려왔다는 말도 믿었…
당진시대 아카이브에 보관된 기사입니다. © 당진시대. 정식판은 각 기사의 원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