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3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수문통 7수문통의산증인어민장원식씨(2)
장원식 씨는 1960년대부터 삽교천 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 리 앞바다(지금의 삽교천 하구)에서 눈장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눈장에 사 용되는 말뚝은 신평에 배를 대고 인근 산에 가서 사왔다. ”우리는 눈장이라고 말뚝 받아놓고 그물 쳐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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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건 · '우현선의 포구' · 산업·경제 · 2022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22.09.3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장원식 씨는 1960년대부터 삽교천 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 리 앞바다(지금의 삽교천 하구)에서 눈장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눈장에 사 용되는 말뚝은 신평에 배를 대고 인근 산에 가서 사왔다. ”우리는 눈장이라고 말뚝 받아놓고 그물 쳐 놓고…
2022.09.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수문통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장원식 씨는 13세부터 어업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의 기억에 따르면 수문통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가구가 거주했으며, 생선을 사러 온 상인들과 인천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온 승객, 쌀을 실어 나르는 인부들로 늘 붐볐다…
2022.07.2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수문통은 우강면 신촌리 3반으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삽교천 물줄기가 신촌리와 부장리의 경계로 갈라지는 지점 튀어나온 곶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곳을 우평포(牛坪浦)라 칭했다. 1960년대까지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던 수문통은 조수간만의 …
2022.07.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정기수 씨의 배에는 선주인 자신을 포함해 모두 네 명의 선원이 함께 탔다. 동력 장치 없는 풍선(風船), 돛배였다. 선원들의 월급은 잡은 물고기로 지급했다. 판매는 당시 하리에 살던 어촌계장 홍헌팔 씨가 주로 맡아서 해주었다. 물때는 밤하늘 달을 보고…
2022.07.0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기 전에는 복(伏) 중이면 삽교천에서 해파리도 잡혔다. 정기수 씨는 운정포구의 한 어민에게 해파리잡이에 필요한 어구를 빌려 사용했다. “해파린 복 때나 잡어. 초복·중복·말복이 지나면 없어지는디, 저 구양도다리께 저쪽 막은디 그 골이 원 큰 골이었어.…

2022.06.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한때는 남원포구에 어선이 수십여 척이 정박했다고 하나, 구술에 참여한 주민들은 1960년대를 전후로 포구에 어선은 많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대신 부장리의 어선들은 남원천을 따라 곳곳에 정박했다고. 주로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부장리에 정착한 피난민들…
2022.04.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한 남원포구는 강문리의 사발포(부리포)와 더불어 1970년대까지 우강에서 가장 번화한 포구였다.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으며, 남원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부장리농협이 설립되면서 부장리는 물론, 인근 마…
2022.01.1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없어졌죠.” (원종성) 인천행 여객선과 화물선, 어선들이 드나들던 구양도포구에는 자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예당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도정하는 방앗간은 물론, 술집도 여러 곳이었다. 구양도포구에 이름난 술집으로는 ‘양촌집’이라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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