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이유없는 반항의 서절들"
김태영 송악면 월곡리
이 사진을 갖고 있는 친구가 과연 있을까? 깜짝 놀랄 친구들 모습이 자못 기대된다. 때는 1958년. 중학교 1학년때로 기억한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데 아무튼 우리는 모교인 상록초등학교를 찾아가 기념촬영을 했다.
당시엔 중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는데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남자아이들은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고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시집을 갔다. 그래서 사진속에서처럼 여자애들 모습이 지금 애들과는 달리 무척 조숙했다. 아랫줄 왼쪽에서 세 번째 여자친구가 지금 신평에서 예당약방을 운영하는 심희철이다. 맨 뒷줄 오른쪽 첫번째가 나이고 부곡리 이장을 봤던 김황곤, 한진리 이장을 봤던 방호섭의 모습도 보인다.
학교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당시 나는 송악초등학교 한진분교를 다녔었다. 소설 상록수가 쓰여졌던 심훈선생의 필경사 옆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내가 다닌 한진분교였다. 4학년이 되면 한진분교학생들은 본교인 송악초등학교로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침 농촌계몽운동 시절 야학당 역할을 했던 상록학원이 없어진 자리에 지금의 상록초등학교가 세워지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상록초등학교의 1회 졸업생이 되었던 것이다.
초창기 상록초등학교 동문들은 상록수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애향심·애국심들이 남달랐다. 그래서 지금도 대의를 위한 일에 잘 나서고 잘 뭉치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식또래의 후배들과 함께 동문회를 하게 되었다. 후배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더이상 참석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리만이라도 지켜달라고 아우성이어서 마지못해 일년에 한번씩 있는 총동문회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 두번째 사진은 천안공고 3학년 재학시절이다. 4.19혁명 등으로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나는 공부보다 데모를 하러 나가거나 파격적인 옷차림으로 시내 빵집을 배회하는 일을 더 즐겨했다. 하지 말라는 일들만 골라서 했던 시절, 이유없는 반항의 시절이었다. 사진속에서 나는 ‘차이니즈복’을 입고 있다. 물론 ‘금지된 복장’이다.
? 아내(조옥자)와 나는 한때 월곡리 이장과 부녀회장을 동시에 맡았었다. 그래서 집에는 마을의 역사가 될만한 사진들이 몇장 있는데 이 사진도 그 중 하나다. 1988년 즈음, 월곡리에 버스노선이 처음으로 개통됐을 때 축하의식으로 버스에 꽃다발과 깃발을 세워놓고 동네주민들과 기쁨을 나눴다. 개통 당시 하루 대여섯차례 버스가 운행됐는데 지금은 이용자가 줄어 하루 두차례밖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