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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동 기지시줄다리기 기능보유자] 씨암탉 잡아주신 장모님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구자동 기지시줄다리기 기능보유자] 씨암탉 잡아주신 장모님

대호지면 · 2005년 9월 당진시대 게재

나의 처가는 대호지면 적서리다. 당진 최북단에 위치해 오지중에 오지로 꼽히던 곳이 바로 적서리였는데 결혼하기 1년 전인 1968년도, 덜컹거리는 비포장길을 달려 처음 처가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내 아내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아래로 남동생만 셋을 둔 가장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장모님은 그날 큰사윗감이 왔다고 씨암탉을 잡아 주셨다. 그 씨암탉 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1

첫번째 사진은 그로부터 1년 뒤, 아내 남현숙과 혼례를 치르던 날의 풍경이다. 내 아내 뒤로 장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맨 앞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은 아내의 백부님이고 그 뒤로 큰 처남인 남준우(당진읍새마을 협의회장)의 모습이다.

홀로 4남매를 키워오신 장모님은 속앓이를 많이 하셔서 결혼 전에도 난 약봉지를 들고 수시로 장모님을 찾아뵈었었다(그 당시 난 기지시줄다리기 기능보유자였던 고 이우영 선생이 운영하신 대동약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장인어른이 안계신 집안의 맏사위였기에 난 아내와 함께 어린 세 처남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처남들은 내가 살던 기지시로 나와 우리집에 기거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생이던 막내처남은 나에게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2

두번째 사진은 기지시수퍼를 운영하던 시절 둘째처남과 아내의 모습이다. 일찌감치 의용소방대를 비롯, 라이온스 등 사회활동을 하느라 밖으로 많이 돌았던 나를 대신해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3

세번째 사진은 70년대초 송악면사무소 풍경이다. 지금 이 건물은 철거됐다.

네번째는 아내의 결혼전 모습이다. 당진읍내에 있던 상록수 미장원 앞에서 사촌언니(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나는 만난지 2년만에 결혼을 했다. 집장만을 해놓고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있던 중이었는데 교제기간이 길어지자 아내가 의심을 한 나머지 마음이 돌아설 위기였다. 아내를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계획을 수정해 결국 집 장만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쌀계를 들어 결혼 5년만에 집을 마련했다. 장모님을 닮아 생활력 강한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