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보금자리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신평 매산리"
박창용 전 서해중앙신협 이사장
고향인 신평면 매산리는 내게 늘 따뜻한 보금자리였고 삶의 터전이었으며 꿈을 키우고 희망을 만들었던 인생의 산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날 때 나는 흙의 정직함을 배우며 희망을 찾으려 했고 새로운 도전으로 삶의 보람을 찾았다. 치열했던 인생의 한 시기를 지나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갖고 돌아보는 인생의 한 장면은 늘 새롭게 다가온다.
#1
첫 번째 사진은 당진정보고(당시 당진상고)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무렵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면천의 영탑사에 들러 찍은 것이다. 버스를 타고 비포장길을 달려간 영탑사는 공부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때마침 화창한 봄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한 장 멋드러지게 찍었다. 맨 왼쪽이 나이고 순서대로 정운영, 주지스님, 차득환, 우태영이다. 젊은 학생들이 마음에 드셨는지 주지스님도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셨다. 모자를 벗고 있는 차득환은 홍성에서 페인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돈을 무척 많이 벌었다고 한다. 나머지 친구들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2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가기 전에 나중에 손위처남이 된 친구 이명진과 모교인 한정초등학교에서 찍은 것이다. 운동회 때였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운동회는 주민들이 다 같이 참여해 어울리는 한마당 잔치였다. 왼쪽에 보이는 떠꺼머리 총각이 나이다. 세상에 막 진출해 앞날을 고민하던 시기였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여유로웠다. 친한 친구인 이명진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그 여동생인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됐다.
#3
세 번째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용인의 에버랜드에 아들인 박지만과 함께 놀러가서 찍은 것이다. 삶에 지쳐 어려움에 빠졌을 때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다. 개구장이 초등학생이었던 장지만이가 이제는 군대를 제대한 23살의 청년이 됐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박지만 고향 매산리에서 이장도 보고 농업경영인 신평면회장도 역임했으며 나중에는 서해중앙신협 이사장을 맡아 보람 있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