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자 생

전 송악면장

원로 언론인이며 문필가였던 鮮于煇(선우휘)씨의 글 ‘친구여 지금 어디있는가?’ 라는 글에서 당시 소학교 시절(필자는 실향민으로 1.4후퇴 때 월남) 옆에 앉은 같은반 아이 때문에 무척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바지저고리는 때에 찌들어 항상 지저분하고 더구나 점심때 도시락을 먹을때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잔뜩 들어 있는 것도 역한데 이 친구는 그것을 빨아 먹고 머리카락을 버려가며 아무말없이 밥을 다 먹어 치우곤 하더란다.

때문에 점심때가 되면 불쾌해서 멀찌감치 피해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 친구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자식의 친구들을 맞는 그의 어머니가 남의 도움 없이는 가사를 돌볼 수 없는 장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 미어지는 아픔과 죄스러움을 필설로 다 못하겠으며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맛있게 먹던 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그 미워했던 마음과 후회를 돌이키며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 어머니의 그리움에 목이 메일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고 쓴 글을 접한 일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교육하기 위하여 온갖 정열을 쏟고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는 열려 있는 하늘이요,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나인 이처럼 절실한 인간관계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 피는 인간의 3대 액체중에서 가장 강하고 뜨겁다 하던가. 피로 얽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인륜의 근본이요. 천륜이라.

부모가 장님이고 자식이 살인범이 되고 흉악범이 되어도 부모와 자식관계는 결코 끊어지는 것이 아닐진데 문명의 그늘에서 급속히 번지는 비극적인 일들, 모든 가치가 해체되고 자식은 물론 부모마저 교환가치 형태로 흘러가는 세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산의 해가 지고 싶어서 지는 것이 아니듯이 세월이 흐르면 젊음이 늙음일진데 인간이 기계의 부속물처럼 전락하는 것은 곧 인간성 파괴인 것이다.

아들을 장래를 기탁할 투자대상으로만 알고 딸은 비싸게 팔 고급 상품처럼 가꾸고 꾸미는데만 열중하는 그런 물질적 차원을 벗어나서 그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함께 괴로워 할 수 있는 참다운 인간적 자세가 기성세대에게 지극히 필요한 때다.

지금의 세태는 전통적인 부모에 대한 효도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만 부모가 진정코 깊은 애정으로 자식을 보살펴 주고 자식과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서 가정과 사회에 자기의 도리를 다할 때 인간의 본디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사람다운 자취를 되찾을 때, 또 자식은 부모의 한량없는 은혜에 대하여 고마워하고 보답하는 마음, 그것이 곧 인간의 참마음의 표현이요, 우리 문화의 선진이고 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