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아이와 함께 온 엄마들, 퇴근하고 바로 온 노동자들, 학교 선생님들, 지나가던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든 곳은 촛불로 가득한 터미널 광장. 슬픔을 나누고, 잊지말자 다짐하고, 진상을 규명하라 외치는 사이 날은 어두워졌고, 우리들의 촛불은 더욱 빛났다.

당진어울림여성회(당시에는 당진좋은엄마모임)가 거리로 나섰던 첫 기억이다. 당시 고작 10살이던 둘째.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모행사에 친구들과 다녀올 만큼 세월이 흘렀다. 담담한 듯 보이는 엄마들의 표정이 가장 슬펐다고, 이제는 자기도 눈물이 안날 줄 알았는데 또 많이 울었다고 말하는 스무살 성인이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바다 속으로 스러져가는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봐야 했던 우리는 치유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안전해졌을까? 가족을, 친구를 잃었던 그들의 삶은 회복되었을까?

2014년 4월 이후 모든 순간을 기록해야겠다는 의지로 버텨낸, 문지성 양 아버님 문종택 님은 다큐영화 ‘바람의 세월’을 개봉했다. 이제 그만하라고, 가슴에 묻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엄마 아빠가 열심을 다했노라 말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며 ‘지금 여러분이 타고있는 세월호 얼마나 안전하냐’고 물었다.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면서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했던 해경 지휘부는 무죄가 확정됐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며 생명안전기본법을 만들어야한다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사이 이태원에서 오송에서 또다시 참사는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비 지원마저 10년만에 종료되었다. 참사의 구조적 해결도, 기억하겠다던 우리들의 다짐도,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10년의 세월속에 모두 희미해졌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또다른 아픔들과 연대하며 더욱 분명해졌다. 일본군 ‘위안부’피해 할머님들의 손을 잡았고,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함께 울었다. 오송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 같이 외쳤다. 그 날,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많이 불렀을 이름 ‘엄마. 아빠’들이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불안한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다.

그들이 지난 시간 걸어왔던 ‘바람의 세월’을 그저 슬퍼하며 기억하는 것 만으로는 너무나 부끄럽다. 문종택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지성이 아빠로 불리고 싶어하시는 ‘바람의 세월’ 제작자는 ‘슬픔을 주기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하셨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슬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꾸기 위해서’ 여야 한다. 이제 ‘가만히 있으라’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고 열심을 다했노라 말하는 진짜 어른이 되고싶다. 당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