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진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마을의 모습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인 마을 등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세 잊힐지도 모르는 마을들이 존재한다.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마을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록한다.
※ 이 기사는 2024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취재·보도합니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기준, 읍내12통에는 330세대(1인 가구 212세대, 1인 가구 외 118세대), 524명(남자 269명, 여자 25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빈 집이 늘고 우범지대화됐던 이곳이 마을주민들의 노력으로 새롭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당진읍의 행정적·경제적 중심지였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읍성의 서문 밖 ‘서문리’
당진1동의 맨 서쪽에 있는 읍내12통은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였던 마을이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하면서 읍내12통이 됐다. 당진시가 ‘당진군’일 적에 읍내12통은 ‘서문리’라는 마을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점은 마을회관의 머릿돌과 도로명주소(당진시 서문1길 20-8)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을회관 머릿돌에는 ‘서문리 마을회관’이라고 돼 있다.
당진1동주민자치회 부회장이자 마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성기돈 읍내12통 개발위원회 감사는 “서문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757년에서 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 읍지인 『보물 여지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당진현 현내면 서문리에는 민가 24호에 남성 37명, 여성 4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서문리와 현재의 서문리 구역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진읍성의 서문 밖 일대를 ‘서문리’라고 불렸다고 추측된다. 성 감사는 “읍성이 조성되고 (마을이 읍성에서) 서쪽에서 있다고 해서 서문리로 불렸다”면서 “서문의 추정지는 발굴되지 않아, 자료 조사가 더욱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2011년 11월 30일 준공한 서문리 마을회관은 공교롭게도 준공 한 달 만에 당진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읍내12통 마을회관이 돼 버렸다. 이름이 어떻게 변했든 마을회관은 어르신들에게 의미가 큰 곳이란다. 성 감사는 “부녀회에서 꽃밭을 가꾸고 고구마 심어서 마련한 수익금을 모아서 현재 회관 자리를 구입하고, 주민들에 의해서 회관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시장과 우시장의 ‘원조’
주민들은 서문리 구역에 대해 구 시장을 비롯해 당진성당 안쪽에서 이교다리 근처에 있는 조향빌딩과 여관 ‘한라장’ 일대까지라고 설명한다.
과거 이 일대에는 당진천을 중심으로 시장과 우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현 읍내12통 마을회관 앞에는 ‘당진가축병원’ 건물이 있다. 당진가축병원 건물 앞에 당진시 배수펌프장이 있는데, 이 펌프장 일대가 우시장이었단다.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우시장이 1974년 현 당진2동행정복지센터 자리로 이전했다고. 성 감사는 “펌프장 뒤로도 우시장이었는데, 우시장이 있었기에 가축병원을 운영한 것”이라면서 “또한 펌프장 바로 앞에 있는 건물(현 행복이네 협동조합)은 대장간이었고, 대장간 앞에는 소금창고, 현재 서문리 임시주차장으로 조성한 곳에는 과거 도축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 시장은 일교슈퍼마켓부터 심야야식이 있는 곳까지 전부 시장이었다. 현재의 당진전통시장(당진시 당진시장길 99)은 과거 서문리에 있던 시장이 옮겨온 것이다.
과거 장이 서던 모습에 대해 김정순 읍내12통 노인회 부회장은 이렇게 전했다.
“과거에는 이쪽으로는 시장이 있었는데 시장이 옮겨져서 현재는 이 일대를 구시장이라고 불러요. 닭 장사, 국밥 가게, 국밥 가게가 있었어요. 물들이는 물감(염색) 장사도 있었으며, 찐빵 장사도 있어서 우리들이 가서 찐빵을 사 먹으면 사탕가루를 잔뜩 줬어요. 장도 많이 서고 좋았죠.”
당진읍내 최초의 다리
마을회관에서 바깥쪽으로 나오면 당진1동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다. 행정복지센터가 2005년 7월 현재 위치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경찰서로 사용됐다. 성 감사는 “일제강점기 때 경찰서(순사주재소)가 있었고, 이후에 경찰서가 이전하고 행정기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행정복지센터 바로 옆으로는 현재 성모병원이 있다. 성모병원 이전에는 지금은 없어진 구세병원이 있었다. 최향숙 읍내12통 노인회 감사는 “성모병원 전에 옛날에 구세병원(구세의원)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성모병원이 거기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성모병원 옆에는 ‘당진시중장년기술창업센터’와 ‘당진청년타운 나래’가 있다. 과거 이 일대에는 당진군청사가 있었다. 당진시는 청사를 수청동으로 신축이전하고 옛 군청사 자리에 당진청년타운 나래를 만들었다. 군청사 본관 건물은 2020년 철거해 도심광장 및 주차장 조성공사를 하고 있다. 별관은 당진시중장년기술창업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읍내12통에는 당진읍내 최초의 다리인 당진제1교(일교다리)와 두 번째로 건설된 당진제2교가 있고 보호수는 은행나무(지정일 1982년)·느티나무(지정일 1982년)·호두나무(지정일 2013) 등 세 그루가 있다. 일교다리 아래로는 하천(당진천)이 흐른다. 김 부회장은 “옛날에 물난리가 나면 하천 일대의 가정집이 떠내려갔다”면서 “또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냇가 물이 아주 맑았고, 냇가 밑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 모여 마을 문제 개선
이렇게 시장과 여러 관공서가 있어 번성했던 지역은 관공서가 이전하고 새로운 도심이 형성되면서 일대에는 공동화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새로운 도심으로 떠났고 빈집이 늘면서 서문리는 우범지대화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읍내12통이 변화하고 있다. 성 감사는 “안심마을 공모사업, 행정안전부 ‘슬기로운 동네생활’ 공모사업을 추진해 마을의 변화를 이끌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폐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텃밭을 조성해 당진1동주민자치회 주관으로 도시농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서문리 봉사단을 조직해 봉사활동도 하고, ‘서사모’ 동아리(서문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를 만들어 매월 2회씩 모여 우리 마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 등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운자 읍내12통 노인회장은 “노인회에서도 봉사단 활동을 함께하는데,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 줍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 감사가 아침이면 마을을 다니면서 청소를 해서 덕분에 마을이 많이 깨끗해졌다”면서 “앞으로도 마을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