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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절친한 친구가 남편과 함께 집을 찾아왔습니다. 생각하지 않았던 방문이어서 이렇다할 준비도 못한 채 겨우 차나 한잔 대접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굳이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러 왔다’는 고집에 무엇 하나 시켜주지도 못했습니다.
그 친구가 돌아가서 메일을 한 통 보내왔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자기 주장 강하고 여기저기 여행다니기 좋아하던 사람이 집에 들어앉아서 애 키우고 살림하는 것 보니까 안쓰럽다”고 하더라고 말입니다. 참고로 이 친구 부부는 아이가 없고 맞벌이를 합니다.
친구는 행여 말의 뜻을 오해하고 기분이 언짢아지지 않으려나 싶었는지 그게 ‘좋은 뜻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까지 덧붙여 놓았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지만 사람의 말이란 게 쓰여진 어휘보다 그때의 분위기나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그저 친구의 설명을 믿기로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다른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대학 때부터였으니 근 십오 년을 한 켤레의 신발처럼 붙어다녔던 친구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뒤늦게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그러더군요. “왜 아이한테 묶여 있어? 차라리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고 네 시간을 가져.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알아보던가. 그리고 어쩌다 하루쯤은 아빠한테 아이 맡기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그래. 나는 널 보면 왠지 답답해”라고요. 이런, 친구와 말을 하다보니까 제가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하고 있더군요.
“결혼이라는 게 어느 정도 서로 양보하고 사는 거지. 어떻게 예전처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냐? 너 내가 너 만나러 가지 않으니까 심통난 거지? 나는 아이한테 묶여 있다고 생각 안 해. 이것도 일종의 투자라고 볼 수 있지.” “그래 어쩌면 가장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이 친구 결국은 이런 말로 공격을 거두고 맙니다.
예전에(물론 결혼하기 전이죠) 저는 산을 참 좋아했습니다. 일년에 한번 있는 삼박사일의 휴가를 온통 지리산 종주에 바쳤습니다. 주말이면 북한산이나 관악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들강아지처럼 산으로 들로만 돈다’고 나무라셨지만 산에서 맡는 흙냄새, 풀냄새, 바람냄새에 이끌려 지남철에 들러붙는 철가루처럼 산을 찾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적게는 두명에서 많게는 열두어명의 선배, 친구, 후배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그들 중 제일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난 후는 거의 붙박이장처럼 집에서만 지냅니다. 여행은 커녕 전화나 메일이 아니고는 친구를 만나는 일도 드물기만 합니다. 그것이 그만 친구들의 감정을 흔드나 봅니다. 마치 산에 가고 싶은 것을 꾹꾹 참고 있다거나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변명을 하다 말았습니다. 대신 ‘앞으로도 사오년은 이렇게 살 터이니 답답하더라도 참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못다한 말을 여기 풀어놀까 합니다.
“예전에 산에 열심이었던 것은 산이 좋아서였어. 지금은 내 남편과 아이가 좋아서 남편과 아이에게 열심인 것뿐이야. 나는 내 아이들이 예절 바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가슴 큰 아이들로 자라길 바래. 또 내 남편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대신에 조금씩이지만 사오년 후를 준비할께.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거냐고? 아니... 그저 서로 조금 양보하고 절약하며 사는 것 뿐이야.”
아줌마가 되고서야 어떤 사람들은 아줌마라는 말 앞에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무위도식 하는’ 또는 ‘세상에서 가장 팔자 편한’ 또는 ‘무능하고 무식한’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이들 조차도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안쓰러움’과 ‘답답함’을 느끼는 것을 보고 자꾸만 마음이 ‘산업예비군’이 되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