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9년 3월 청운의 꿈(?)을 안고 정미면 덕마리 소재 신성전문대학 행정실무과에 자리를 잡았다. 몇 년에 걸친 시간강사생활을 접고 전임으로 발령을 받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한해 전 안동 소재 대학에 지원하여 합격통지를 받았음에도 이후 학생모집이 어려워 부득이 임용을 취소한다는 연락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당시 2명이 합격하였는데 한 사람은 그쪽 지역 사람이라 그런지 임용을 하고 타 지역 출신인 나는 임용을 하지 않았다. 하늘을 원망도 하였지만 절차탁마하는 심정으로 1년을 견디다보니 새롭게 당진에 정착할 곳이 마련되었다.
그동안의 세월을 돌아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가운데 희노애락의 감정이 교차하는 많은 사건도 있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고 하였는데 개인의 성장사 역시 환경변화에 대한 각자의 대응 방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그 심각성이 더 표면화되고 구체화 되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우려는 이십여 년 전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개나리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게 된다’는 불길한 예측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소속했던 사회복지과도 학과명이 행정실무과에서 출발하여 행정실무계열 복지행정과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임용 초기만 해도 행정학 전공자로서 또 대전지역 학원에서 공시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던 경험을 살려 9급 공무원들을 배출해 보자는 의욕으로 학생들을 독려하기도 하였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후 학생모집이 어려워 고민을 하던 2000년대 중반 경 학회에 참석했다가 이러한 고민을 토로하자 후배 교수가 사회복지를 접목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하며 본인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성공사례를 들려주었다. 학교로 돌아와 학과명을 복지행정과로 바꿔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고 취업도 사회복지분야와 행정실무분야의 두 부분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며 활로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진로를 함께 상의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나는 학창시절 진로를 정하며 많이 고민하였다. 대학교 4학년 때는 행정학과에서 사회학과로 전과를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우리 학생들도 본인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직업을 택해서 직장생활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 기꺼이 상담자가 되어 작은 도움이라고 주려고 하였다.
또한 취업률 제고라는 목표도 있었지만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취업을 적극 지원하고 응원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교수의 본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람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직업생활을 통해서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과의 관계향상을 통해서 직업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전공이 행정학이다 보니 당시 군이었던 당진의 행정발전을 위해 자문도 하고 조언도 하며 사회활동을 하였다. (사)당진지역사회연구소는 이런 점에서 나에게 큰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각종 토론회에서 나는 발표자나 사회자로 역할을 수행하였고 시장후보자 및 국회의원후보자를 초청하여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당진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기반에는 행정학이란 문제해결을 위한 학문이라는 개인적 소신이 작용하였다. 또 모름지기 행정학자란 이론만 연구해서는 안 되고 실천도 병행하여야 한다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사회복지학 석사를 취득하고 당진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였는데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개선과 풀뿌리복지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논은 Grow Old with Me라는 곡을 유작으로 남겼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The best is yet to be’라는 가사가 나온다. 지나온 스물여섯여 성상을 돌아보며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자유의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을 아직 오지 않았는가 아니면 살고 있는가’라는.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분에게 감사하며 그동안 행복했다고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