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나루 시민학교의 최고령 졸업생인 이순희 씨(93)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굽은 등 위로 내리는 비를 다 맞아 가면서도, 수업이 있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성실하게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간다.
해가 채 뜨기도 전인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 밥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사는 고대면 진관리 동네를 떠나 고대면행정복지센터 앞 정류장까지 걸어 나온다. 마침내 기다렸던 버스가 반갑게 도착한다. 93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해나루시민학교가 있는 버스를 타고 가족의 도움 없이 스스로 등교한다. 체력에 부쳐 길에 나서는 것이 어려울 법하지만, 이순희 씨는 학교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배움을 꿈꿀 수 없었던 시절
이순희 씨가 태어났던 1930년대만 해도 여성에게 배움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다른 여성들의 삶처럼 이 씨 역시 “여자가 대학을 다녀서 뭐 하냐”며 “글 배워서 편지나 쓰고 집 나갈 생각만 하지”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한나절 학교라도 보내주면 안 되냐”고 부모에게 애원했어도, 학교의 문지방도 밟아 보지 못했다. 국민학교조차 가지 못했던 이후 그는, 중학교에 진학한 다른 학생들이 부럽기만 했단다. 이 씨는 “당진중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부러워 그림자도 보고 싶지 않아 그 근처는 아예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21살의 나이에 아래로 여덟명의 동생을 둔 장남과 결혼한 이순희 씨의 상황은 나아질 것 없었다. 그는 “보리를 머리에 이고 방앗간에 가서 보리방아 찧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이후 3남 1녀의 자녀를 낳고 키우며 집안일은 물론, 농사일까지 그의 몫이 됐다.
그는 “남편은 농사일과 집안일은 내팽개치고 전국을 돌아다녀 내 속을 많이 썩였다”며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해준 큰아들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죄지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작, 해나루 시민학교에서의 배움
지난 10년 전쯤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지내면서 농사일이라도 돕고 싶었지만, 연로한 탓에 도움을 주지 못해 이 씨의 마음은 애가 탔다.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던 손녀가 할머니인 이 씨에게 글을 배울 것을 제안했고, 해나루시민학교의 존재를 알려줬다.
손녀의 제안으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그는 “잊고 살던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2015년에 해나루 시민학교에 입학한 이순희 씨는 초등학교 1, 2, 3학년의 과정을 마치고 2018년도에 졸업했다. 그 이후로도 학교에 다시 나와 초등학교 수업을 꾸준히 들으며 올해 졸업식에도 함께했다.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 진학을 권유했지만 그는 “내 나이 90세가 넘어 머리에 들어오는 것도 없고 자꾸 잊혀만 간다”며 포기했다. 한문이나 영어와 같은 과목을 새롭게 배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초등학교 과정을 통해 글씨를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이 씨는 “‘친구들처럼 책도 줄줄 읽고 싶고 글자도 척척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했다”며 “그런데 어느 날 가게의 간판을 읽을 수 있고 나와 가족의 이름 그리고 주소를 쓸 수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학교는 그에게 활력소라고 한다. “선생님이 책 읽어 주실 때마다 너무 재밌다”며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라며 수업이 고생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즐거웠다고. 특히 “선생님에게 글씨를 예쁘게 쓴다는 칭찬도 들어봤다”고 말하는 이순희 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학생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순희 씨는 “입학한 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남은 바람은 “그저 내 발로 다닐 때까지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다”라며 가족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