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천 한 바퀴를 거닐었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많지만, 아직 봄꽃이 피기 전인데다가, 평일이라 조용했다. 아마 주말이거나 벚꽃이 만개할 때는 관광객으로 복작해질 것이다. 그동안 빠르게 걷느라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 있는 이곳에서는 그대로 눈으로, 귀로 들어왔다. 저절로 숨이 트이며 여유가 자연스레 스며들어왔다.
최근 당진이 새로운 관광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삽교천과 솔뫼성지, 신리성지, 왜목마을 등 여러 관광지가 많지만, 그중에서 ‘면천’은 사뭇 다르다. 마을 자체가 주는 따스한 기운이 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직접 걸으면서 만났던 면천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첫 시작, 면천읍성
면천은 고대로부터 당진의 중심이었다. 조선 태종 13년에는 면천군으로 개칭돼 14개 면을 관활하기도 했다. 심지어 고종 32년 지방행정 개편 때는 홍주(홍성)에 속했던 신평의 현내, 신남, 신북 3개면과 합덕의 합남, 합북 2개면 등 8개 면이 면천으로 편입되면서 22개 면까지도 관할했던 큰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4년, 면천군이 당진군으로 편입됐다. 면천군 소속이었던 마산면과 송암면을 병함해 한때는 마암면이라고도 불렸으며, 이후 1917년에 다시 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당진의 중심이었던 면천답게 이곳에는 꽤 큰 규모의 읍성이 있다. 면천읍성은 사람이 옮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돌로 쌓여져 있다. 면천읍성은 평소에 군현으로 통할하다가 왜구가 친입할 때는 군민을 피신시켜 안전하게 보호하던 기능을 했다. 지금은 이 안에서 사람이 살고 생계를 꾸리고 있으나, 100여 년 전에만 해도 성 안에 민가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 점점 사람들이 터를 잡으면서 한때는 당진 최대 규모의 장이 섰던 곳이 이곳이다.

현재 면천읍성이 복원이 한창 중으로, 남문과 서문이 복원돼 어느 정도의 읍성 모습을 갖춰졌다. 면천읍성 안에 들어서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복원이 끝난 남문을 시작으로 걸어본다. 최근에 남벽에 세워진 20여 개의 대오방기가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모습이 기세있게 느껴진다.
면천읍성 곳곳의 가정집에는 삶의 흔적이 꾸며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면천의 자랑인 콩국수 맛집들도 면천읍성 안과 밖에 즐비해 있다. 면천의 맑은 물과 콩으로 만든 콩국수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시작해도 좋다. 또한 면천읍성 안에는 관광해설소가 있어, 면천 관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풍남루에서 조종관까지 천천히 걷기
남문으로 빠져나와 성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었다. 성벽을 따라 가보면 경찰서를 마주할 수 있다. 경찰서를 지나면 ‘미인상회’를 만날 수 있다. 미인상회는 100년 된 우체국을 개조한 카페로, 일제감정기 때 지어져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면천에는 미인상회 외에도 오래된 구옥을 살려 만든 상점들이 있다. 그 상점을 따라 걸어 보는 것도 좋다.
미인상회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 풍락루다. 풍락루(豊樂樓)는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살기 좋은 땅에서 백성과 더불어 평안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면천관아의 문루였던 누각이다.

풍락루 뒤에는 옛 면천군의 관아시설이 복원 중에 있다. 풍락루를 등지면 바로 객사가 보인다. 면천객사의 현판에는 ‘조종관(朝宗館)’이라 쓰여 있는데, 여기서 ‘조종’은 제후가 임금을 배알해 조회를 한다는 뜻이자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면천을 상징한다고 한다. 바다는 궁궐이며, 면천에서 흘러가는 물이 바다에 이르러 제후의 역할을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겼다.
한동안 이 자리는 면천초등학교가 있었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면천초가 이곳에서 자리해 있다가 읍성 복원 사업과 함께 현재 자리를 옮겼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은행나무
객사 앞에는 천연기념물인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수령이 1100여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고려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은행나무가 면천의 오랜 과거와 지금을 이어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담긴 설화가 있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할 때 공을 세운 복지겸 장군과 그의 딸 영랑과 관련된 설화다. 고향으로 돌아 온 복지겸 장군이 병으로 누워 있을 때, 효심이 깊은 그의 딸 영랑은 아버지를 위해 온갖 정성을 들인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했고, 영랑은 아미산에 올라 아버지를 낫게 해 달라며 기도를 올린다. 기도 백 일째 되던 날, 신선이 나타나더니 두견주를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그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뒤 정성을 들이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효녀 영랑은 신선의 말을 그대로 따랐고, 복지겸 장군은 두견주를 마시고 병이 거짓말처럼 치유됐다는 이야기다.
사실을 알 수 없는 설화지만 실존 인물인 복지겸 장군과 지금도 남아 있는 면천 은행나무, 두견주가 그때와 지금을 연결해 주는 것만 같다.

천천히 레트로 거리 걷기
앞서 100년 된 우체국을 살린 미인상회를 시작으로 옛것을 살려 만든 상점가를 따라 가보는 것도 좋다. 서양화 화가인 윤미경 대표가 운영하는 진달래 상회에서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나고, 그 옆에 60년이 넘은 과거 ‘자전거포’였던 건물을 최대한 살린 작은 책방, 오래된 미래도 들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래된 미래는 작은 서점이지만, 지은숙 대표가 직접 읽고 애정이 담긴 문구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일찍부터 옛 건물을 살리고 싶어 만든 면천읍성 안 그 미술관도 빼놓을 수 없다. 때마다 바뀌는 전시와 2층에는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 그리고 맛있는 차와 커피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영랑효공원에서 이어지는 대숲바람길
책방과 잡화점, 미술관까지 감성을 충족했다면 다시 거닐며 면천을 느껴보자. 이곳들 중간 지점에는 영랑효공원이 있다. 여기서 ‘영랑’이 앞서 말한 설화의 주인공이다. 영랑효공원은 군자지 연못 주변을 조성한 공원으로서, 군자지는 고려 공민왕 때 지군사 광충룡이 면천읍성 객사 옆에 만든 연못이라고 한다. 군자지 연못 가운데는 군자정이 있다. 이 군자정은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염계의 애련설을 따라 못의 이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 머물며 시를 읊었던 정자라고 하며, 당진시의 향토유적 제1호에 해당한다. 벚꽃이 흐드러질 때면, 고려시대 유물인 옛 돌다리와 군자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랑효공원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샘을 마주할 수 있다. 면천읍성 안에 유일하게 있던 안샘은 효녀 영랑이 두견주를 만들 때 사용했던 샘물이라 전해진다. 이 안샘의 물이 어찌나 물맛이 좋은지, 안샘의 물로 백일주를 담아야 맛도 약효도 좋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군자정과 안샘 모두 예부터 내려오는 것이지만, 그 옆 대숲바람길은 주민들이 손수 만든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주민이 선물한 대숲바람길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비밀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직접 버려져 있던 곳을 가꿔서 만든 이곳은, 길지는 않지만 바람결에 실려오는 대나무 잎의 소리에 쌓여 있던 근심까지 날아가게끔 하는 곳이다.


야간 조명 경관까지 갖춘 골정지
대숲바람길을 통해 내려오면 곧장 골정지로 향할 수 있다. 골정지 주변으로 걷기 좋게 데크가 깔려 있고, 꽤 오래 된 벚나무들이 심겨 있다. 걷기 좋고, 꽃이 필 때면 가지가 만든 터널에서 꽃비가 내려 장관을 이룬다. 골정지의 벚꽃나무가 많이 알려지며, 봄이 올 때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 골정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 선생의 애민 정신이 깃든 곳이다.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골정지 안에 인공 섬을 만들고 정자인 건곤일초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골정지 뒤로는 면천향교가 눈에 들어온다. 당진에 남은 조선시대 공교육 기관은 당진향교와 면천향교가 유일하다. 지방 교육을 담당했던 면천향교는 향교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를 느낄 수 있도록 복원이 잘 돼 있다.
천천히 골정지 한 바퀴를 거닐어 보고, 건곤일초정에서 쉬면서 면천향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면천의 먹거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맛있는 것을 먹어야 그 여행의 기억이 더 오래가게 된다. 면천을 그냥 거닐고 끝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 난 음식들을 맛 보는 것도 추천한다.
면천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라고 하면 콩국수다. 콩을 직접 갈아 깊고 구수한 콩국수는 여름철 점심이면 줄을 설 정도로 많이 찾는 음식이다. 처음에는 콩국수 식당이 많지 않았지만, 콩국수 맛집 동네라는 소문이 나면서 요즘에는 여러 콩국수 식당이 있다. 내 입맛에 맞춰 식당을 찾아 가면 어디든 맛있는 콩국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콩국수와 함께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어죽이다. 생선을 푹 고아 낸 어죽 맛집들도 있다. 원동(면천) 저수지를 중심으로 면천가든, 딸부자집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추어탕이나 어죽을 하는 식당들이 있다. 그 외에도 입맛 따라 식당을 선택한다면, 이 면천 여행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면천의 술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면천의 술이다. 앞서 효녀 영랑의 설화에 등장하는 것이 두견주다. 이 두견주는 우리나라 3대 민속주 중 하나로, 진달래를 가미한 우리나라 최초의 가향주라고 알려져 있다. 이 두견주의 색은 연한 황갈색이며 단맛이 은은하게 난다. 신맛과 누룩냄새는 거의 없고 진달래 향기가 나는 것이 누구나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다. 계속해 보존회가 이어 가며 두견주를 빚고 있다. 이 두견주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면서 선물했던 술이면서,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선장돼 화제를 모으기도 하다.
면천을 딴 막걸리, ‘면천샘물막걸리’도 있다. 영랑효공원 뒤에 자리한 면천주조에서 만드는 이 막걸리는 탄산이 많아 톡 쏘는 맛이 좋고, 달달하면서도 청량하다. 면천막걸리는 당진의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오는 5일과 6일, 축제도 놓치지 마세요
봄과 함께 오는 5일과 6일, 면천에서 문화와 어우러지는 축제가 열린다. 새로운 문화 축제인 ‘면천의 봄, 또봄 면천’ 축제가 현재 준비 중에 있다. ‘또봄면천’은 천 년 역사의 면천읍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역민과 방문객이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기획됐다.
오는 5일 저녁에는 특별 기획된 공간에서 DJ와 함께하는 음악 퍼포먼스가 열리며, 그 외에도 10CM, 바다, 집사, 허대욱 피아노, 킹스턴루디스카, 스프링스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 공연과 창의적인 거리극 퍼포먼스가 준비되어 있다. 또한 예술 체험 부스, 지역 특산물과 전통주를 맛볼 수 있는 먹거리 부스, 당진 농특산물 판매장이 운영된다.
더불어 면천 읍성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면천 읍성 360도 투어, 야간 투어 프로그램 '달빛 산책', 몽산성 마루길 걷기, 향토 무형유산 마을 무예 시연 등 지역의 정체성을 살린 다채로운 체험이 진행된다.
축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축제 주관처인 당진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ngjinart.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