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에서 엄선한 탓인가 내게 넘어온 작품은 지난해보다 편수가 적었다. [시심마]와 [폭풍주의보] 두편이었다. 두편 다 원고지 삼백매가 넘는 묵직한 분량이었다.
원고지의 양이 작품의 질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인간이 삼백여매나 되는 원고지 속에 자기생각을 별 무리없는 단어로 조리있게 담을 수 있었다면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여간 대견한 일이 아니다. 꼭 소설이란 형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라도 자기 생각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나는 심훈문학상이란 이름이 주는 무게를 의식하며 그에 상응하는 좋은 작품과 만나게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하여튼 이 두 작품을 꼼꼼히 다 잘 읽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새삼스럽게도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란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심마]만 해도 그렇다. 불교계의 전문용어인 시심마가 소설제목으로 등장한 것이 문득 마음에 끌려서 나는 우선 이 [시심마]부터 읽었는데 독후감은 왠지 한마디로 말해 안타깝다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쓴 흔적은 역력한데 한편의 소설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좀 미흡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문장, 소재, 구성, 주제 등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신인으로서의 발랄한 패기도, 신선함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인간이 어린시절 고향에서 체험한 너무나 일반적인 에피소드들을 너무 장황하게 설명한 것도 한가지 흠이 된 것 같다. 그리고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인 고향, 그 고향에 대한 사랑의 농도도, 그 의미도 작가가 의도한 만큼 새로운 맛을 풍기지 않는다.
제아무리 좋은 체험이나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재미나게 설명한다거나 혹은 흥미있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을 쓰는데 일정한 무슨 작법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로서의 형상을 갖추기 위해선 자연 그에 합당하는 조직원리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이 작자의 문학에 대한 열망은 확인된 작품인만큼 한번 더 정진하기 바란다.
[시심마]에 비하면 [폭풍주의보]는 일단 소설로서의 면모를 잘 갖춘 작품이다. 사실 별스럽지 않은 작품인데도 비교적 흥미있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잘 끌고 간 점은 역시 문학에 대한 이 작자의 만만치 않은 역량의 표시로 보인다.
관광차 홍도에 갔다가 폭풍으로 구일동안이나 섬에 갇힌 사람들. 불가항력의 그 답답한 상황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끔 연출하는 그 특이한 행동양식이 실은 하나하나 단편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상태인데도 서로간에 전혀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고 끝내는 ‘한갓 나방이로 변하여 피득피득 다 날아가버리는’ 그 기이한 질서속에 통일적으로 흡수시켜 처리한 점도 이 작자의 가볍지 않은 문학수업의 연륜을 감지케하는 대목이다.
나는 든든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취했다. 이 작자는 앞으로 더 정진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현상의 그 뒤에 숨어있는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사회와 인생에 대한 좀더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