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섬 홍도를

더이상 구경할 것도 없거니와

주머니 사정도 그리 넉넉한 편이 못되었다.

그런데......

1. 세째날

해수면 위로 안개가 짙었다. 창문을 열자 습한 바람과 함께 안개가 우욱하니 몰아쳐 들었고, 저만큼 떨어진 해상에 열 대여섯 척의 배가 그림처럼 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안개가 짙었다 뿐이지 아침바다는 매우 잔잔했다. 이 정도의 안개라면 ‘남해퀸호’ 쾌속 여객선이 뜨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다를 내다보던 여자는 배가 뜰지 안 뜰지에 대해 걱정하는 빛이 완연했다.

“오늘 배가 떴을까? 오빠가 배를 탔는지 안 탔는지 전화를 좀 해주면 좋을 텐데. 핸드폰이 있는데 왜 전화를 하지 않는 걸까?”

“아직 이른 시간이잖아. 우리가 늦잠자는 것을 알고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겠지 뭐. 그리고 아마 지금 오고 있는 중일 거야. 첫배가 일곱시에 뜬다고 했지? 그렇다면 거의 반 정도는 왔겠다. 그리고 이 정도의 안개라면 배가 뜨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야. 이 안개도 곧 걷힐 테구.”

아닌게 아니라 안개는 조금씩 엷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떠오른 태양이 안개를 뚫고 뿌옇게 비치고 있었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한 채 띄엄띄엄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도 얼마전 보다는 좀더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덟시 십여분이었다. 목포항에서 일곱시 정시에 배가 출발했다면 지금쯤은 거의 반 정도는 왔을 터였다. 목포항에서 흑산도를 경유해 나와 내 여자가 머물고 있는 이곳 홍도까지는 쾌속선으로 두 시간 반이 걸린다. 꽤나 먼 거리였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조금은 걱정이 아니 되는 게 아니었다. 만약 배가 뜨지 못해 밤차로 목포까지 내려온 처남네가 오지 못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을 것이었다. 아직 전화연락이 없어서도 그렇고, 곧 장마권에 접어든다는 일기예보도 그러했다. 하지만 안개도 장마권에 접어든다는 일기예보도 그리 걱정할 게 못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또한 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아도 사실이 그러했고 말이다.

그렇다. 이 세째날은 처남부부가 도착하는 것 말고는 거의 아무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간 하루였다. 단 하나 남장(男裝)여자의 일이,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긴 해도 뭔가 기분이 좀 언짢긴 했지만.

어쨌거나 한참 동안이나 밖을 내다보고 있던 여자가 돌아서서 옷걸이에 걸려 있는 빨래를 만지작거리더니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고 투덜대며 창틀에 펼쳐널고는 그쪽을 향해 선풍기를 돌려댔다. 어젯밤 티셔츠와 반바지를 빨아 널었던 것이 습한 공기 탓에 잘 마르지 않았던 것이다. 빨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눅눅하고 꾸적거리기만 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창밖 저 아래서 우리가 묵고 있는 해풍장여관의 지배인이 소리쳤다.

“306호 아줌마! 306호 아줌마! 전화요, 전화.”

여자가 ‘오빠다!’라고 반색해 소리치며 튕겨지듯 일어났다. 그렇다고 그냥 나갈 여자가 아니었다. 아니, 그건 기다리던 오빠의 전화에 대한 반가움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할 터였다.

“아줌마라니. 내가 아줌마로 보여? 아가씨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눈깔이 삐었나, 아줌마라 부르고 랄지 랄지야, 정말.”

‘랄지 랄지’는 ‘지랄 지랄’을 거꾸로 발음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올해로 꼭 마흔에 달했음에도 내 여자는 어떠한 경우에서건 아줌마로 불리는 것에 몹시 불쾌해 했다. 내가 지금 아내라 하지 않고 ‘여자’ 혹은 ‘내 여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내라거나 당신, 여보 등으로 불리는 것을 ‘내 여자’는 몹시도 싫어했다. 따라서 이름을 부르거나 연애시절처럼 ‘자기야’라고 불러주어야 했다. 더욱 젊어지려 하고 연애시절의 감정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여자들의 공통된 속성이 아닐까. 하긴, 내 여자가 마흔이라기에는 턱도 없으리만큼 젊어 보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미혼으로 보거나 이제 갓 결혼한 새댁 정도로 보는 것이 나도 싫지는 않다. 아니,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를 흡족하게 만들곤 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전화를 받고 올라오는 여자의 얼굴이 환했다. 장급여관임에도 각 방에 전화가 설치되지 않아서 저 아래로 내려가 음식점에서 전화를 받아야 했다. 물론 여관에 딸린 음식점이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해풍장은 꽤 규모가 커서 세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었는데, 주로 단체손님을 취급한다고 했으며, 그래서인지 아래층에 큼지막한 음식점까지 함께 경영하고 있었다.

“오빠 부부가 배에 타고 있대. 목포항에 안개가 짙어서 아직까지 출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곧 떠날 것 같다고 말했어. 핸드폰 탓인지 감이 썩 좋지 않아서 긴 이야기는 하지 못했는데, 오빠도 꽤나 들떠 있는 것 같애. 우리 임씨(林氏)집안 피가 어디로 가겠어? 다들 어린애 같고, 기분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지. 오십이 다 된 오빠가 동생이 오란다고 밤차까지 타면서 달려오는 것만 봐도 알수 있잖아. 암튼 상황이 변하는대로 다시 전화 한다고 했어. 물론 오는 거야 확실하니까 우리는 다만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지. 그나저나 오빠 부부의 환영식을 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지? 풀꽃 목걸이라도 만들까? 저 너머 해수욕장 근처에 나팔꽃이 괜찮던데.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우선 오빠네가 묵을 방을 예약해 둬야겠어.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오는데 방 하나쯤은 예약해 두는 것이 동생된 도리 아니겠어?”

우리는 오늘이나 내일쯤 홍도를 떠날 예정이었다. 자그마한 섬 홍도를 더이상 구경할 것도 없거니와 주머니 사정도 그리 넉넉한 편이 못되었다. 원래는 남해안을 한바퀴 돌아보자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갑자기 행선지를 바꿔 홍도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배삯이며 숙박비, 매식비 등이 만만치 않게 소요되었다. 어쨌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일단은 홍도를 떠나자는 생각이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