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그만 배가 뜨지 않는 바람에 아흐레 동안이나 발이 묶여 있었는데, 작은 섬 홍도에 그렇게 갇혀있는 동안 인간들이 어떻게 벌레로 변해가며, 순간적으로 번데기 상태를 거쳐 한갖 나방이로 탈피해 피득피득 날아가 버리는가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빨간 반바지 둘과 남자 하나라. 나는 아직도 그 의문을 풀지 못한 채였다. 빨간 반바지는 서로 자매지간은 아닌 것 같고 서로 친구인 것 같은데 거기에 남자가 둘도 아닌 하나가 끼었다는 게 좀 이상스러웠다. 남자는 대체적으로 과묵한 편이었는데, 한 남자가 두 여자를 데리고 놀러 온 것일까? 그렇다면 저들의 이틀밤 동안의 잠자리 배치는? 한 방에서 혼숙? 아니면 두 방을 잡아 남자가 넘나들어? 내가 장난삼아 그런 이야기를 하자 내 여자는 못말릴 사람이라며 눈을 흘겨댔다. 자기가 보기에는 보험회사 직원과 소장인 모양이라고 했다. 빨간 반바지가 남자를 향해 소장님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이상한 일, 보험사 직원이 둘 뿐만도 아닐터에 하필 그렇게 올 것은 무엇이며, 더 의심해 볼 일이 아니냐고 하자 내 여자는 되려 내 사상이 불순하다며 따지고 들었다.

아무려나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저들이 어떤 관계이든, 간밤의 잠자리 배치를 어떻게 했든 내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저들 역시 이곳을 떠나 제 갈길로 각자 흩어지면 그만 아닌가. 기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만 배가 뜨지 않는 바람에 아흐레 동안이나 발이 묶여 있었는데, 작은 섬 홍도에 그렇게 갇혀있는 동안 인간들이 어떻게 벌레로 변해가며, 순간적으로 번데기 상태를 거쳐 한갖 나방이로 탈피해 피득피득 날아가 버리는가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배가 저편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 닿아 승객들을 내려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자 남해퀸호 여객선의 커다란 모습이 나타났다. 그때쯤 일단의 아줌마들이 선착장으로 몰려들었다. 민박 손님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홍도주민들 대부분은 민박을 하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미역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 내 여자도 첫날 민박을 하면서 민박집 주인여자가 이야기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 아줌마들을 피해 슬금슬금 선착장을 물러나 방파제 위로 올라섰다. 여기 오던 첫날 우리가 묵었던 은하민박집 주인여자인 챙모자를 다시 만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물론 다시 만난다 해도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미 홍도를 빠져나간 줄로 알고 있는 터에 다시 얼굴을 마딱드리게 된다면 변명이 궁색해질 것이었다.

그런데 방파제 위에 올라서고 보니 저쪽 끝에 누군가가 우두커니 앉아 망망한 바다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장(男裝)’이었다. 내내 여객선과 바지선 쪽을 바라보고 있던 나와 내 여자는 잠시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저 사람 아무래도 이상해. 자기 말마따나 무슨 사연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웬지 기분 나빠.”

여자가 남장쪽을 흘끔거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그가 남장인 줄을 몰랐었다. 옷차람이 바뀌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복 바지저고리에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은 다시 보아도 우리가 잠깐 스치듯 만났던 남장이 분명했다.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거나 말을 시켜보지 않고는 아무도 그네가 남장 여자라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의 그 ‘남장’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 여자의 말마따나 나 역시도 그 남장이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웬지 음산했고 칙칙한 기분이었다.

어제 해질녘, 우리는 처남에게 전화를 걸어 밤차로 내려오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 산책을 할 수 있는 바닷가라고 해봐야 이쪽끝에서 저쪽끝까지 불과 몇분 걸리지 않은 거리였다. 적당히 바람이 불면서 바닷물이 찰싹거렸다. 부둣가 쪽으로 얼마의 쓰레기가 떠 있긴 해도 바닷물은 다시 보아도 감탄할 만큼 맑았다. 이곳에 와서 감탄한 것이 있다면 기암괴석의 절경보다도 바닷물의 맑음이었다. 흡사 산속을 흐르는 계곡물 같았는데, 바닷물도 이처럼 밑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맑을 수가 있구나 싶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서해하면 황해이고 황해하면 누런바다라는 기존의 인식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홍도를 소개하던 유람선 안내방송원의 말마따나 수심 십 미터 아래의 시계눈금도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닌 듯 싶을 정도였다.

천천히 거닐다가 방파제에 이르렀을 때였다. 방파제 위에 벤취가 있었으므로 잠시 앉았다 가자고 올라서는데 저편 끝에서 웬 사내 하나가 잿빛 승복차림으로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서 저무는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목탁을 두들기고 절을 올리며 또한 두 손 마주하여 빌고 있었다. 그렇다고 스님이거나 땡초는 아닌 듯 했다. 삭발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보통의 사내들과 다름없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아니, 잿빛승복에 목탁을 두드리며 승려행세를 해도 불제자 보다는 무속인 쪽에 가까울 것이었다. 술병을 비롯한 다른 제물들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저 사람 무슨 사연이 있는가 보다.”

내가 말했다.

내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연?”

“곡절이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바다에 관계된 무엇 말야. 바다에 가족을 잃었다거나, 아내를 잃었다든가 하는 것들 말야. 오늘이 그 기일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리고 잃은 아내나 다른 가족을 잊지 못해 반은 중이 되어 생활하다가 찾아온 것이고.......”

“겨우 생각한다는 게 그런 통속적인거야?”

“모르시는 말씀. 통속적인 게 진실이야.”

웬지 호기심이 일었다. 저 사내가 가지고 있는 사연이 궁금했다. 어떻게 말을 붙여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없을까. 술과 북어포와 과일 등을 놓고 제를 올리고 있으니 제가 끝나면 술 한잔 얻어 마시면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으례 그렇듯이 한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술술 풀어내게 마련인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