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목포항을
떠난지 얼마 안돼서부터 그놈의 핸드폰이
터지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처남부부가 도착하면
홍도를 안내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제 점심 무렵 내 여자가 자신의 오빠한테 전화를 걸어 홍도에 와 있음을 알리고 한껏 자랑을 늘어놓자,
“너네들 거기 있어라. 우리가 곧 합류할 테니. 먹을 것도 싸 짊어지고 가니까 걱정말고. 어떻게 가는지, 소요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배가 몇 시에 뜨며, 배삯은 얼마고, 숙박비는 얼마인지나 설명해.”
했던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답게 물어오는 것부터가 전혀 허술한 구석이 없었다. 처남부부는 꽤나 여행을 즐겨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한 주일에 한번 꼴로 조그만 승용차 뒤트렁크에 아이스박스며 취사도구 등을 싣고 계곡으로 강가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그런 처남네는 우리들이 홍도에 와 있노라고 하자 질세라 싶었을 것이다. 경마 해설가(競馬 解設家)라는 좀 색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처남도 화가인 나못지 않게 시간 여유가 꽤나 많은 편이었다. 그러니까 처남네는 어젯밤 열시반쯤 서울역을 출발하는 마지막 통일호 열차를 타고서 새벽에 목포에 떨어진 다음 다시 홍도에 오기 위해 쾌속선 남해퀸호에 승선해 있는 것이다.
배는 목포 해상에 안개가 짙어 늦게 출항하는 바람에 열두시 삼십분에 도착하겠다는 국립 해양공원 관리공단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정시에 목포항을 떠났다면 아홉시 삼십분에서 열시 사이면 도착했을 배였다. 아마도 목포항 부근은 이곳 보다도 안개가 짙었던 모양인데, 그때쯤 홍도 앞바다는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햇빛이 쨍쨍했다. 다시 이어지는 안내방송은 남해퀸호를 이용해 흑산도나 폭포로 나갈 여행객들은 여장을 꾸려 열두시 이십분까지 부두로 나오라고 했다. 수심이 얕은 관계로 그 커다란 여객선은 선착장에 직접적으로 정박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훨씬 규모가 작은 배를 이용해 저멀리 붙박이처럼 떠 있는 바지선으로 옮겨가 있다가 여객선이 도착하면 들어오는 사람들이 하선한 다음 승선해야 했고, 들어오는 사람들 역시 나가는 사람들을 싣고 갔던 그 규모 작은 배를 이용해 선착장으로 들어와야 했다.
우리는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갔다. 선착장까지라고 해봐야 숙소에서 단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대로 웬만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섬이라해도 대부분은 들어갈 수 없는 산과 바위였고, 따라서 그것을 제외한다면 행동반경은 어디든 십분이내에 가 닿을 수 있었다.
선착장에는 이미 홍도관광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이 나와 규모 작은 배에 오르고 있었다. 아직 여객선 남해퀸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거의 다 도착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조금 전 공중전화에서 어느 만큼 오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처남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불통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목포항을 떠난지 얼마 안돼서부터 그놈의 핸드폰이 터지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여자의 손에는 풀꽃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풀꽃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이곳 저곳 돌아다녀 보았지만 풀꽃들이 그리 흔치가 않아 겨우 만든 것이었다. 나이 마흔에 무슨 풀꽃 목걸이냐고 하겠지만 내 여자는 늘 그렇게 감성적이었다.
우리는 그래도 먼저 와 알게 됐답시고 처남부부가 도착하면 홍도를 안내할 계획이었다. 우선은 도착하는대로 짐을 풀고서 유람선을 타도록 해야할 것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 그 유람선을 타지 않고는 홍도의 아무것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촛대바위, 칼바위, 시루떡바위, 아차바위, 독립문바위, 슬픈녀, 뱃머리가 들어가면 입구가 넓어지는 동굴 등 기암괴석이 모두 바다에 면해 있었고 육상으로 통하는 길은 전무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동백림(冬柏林)과, 자생난실(自生蘭室)과, 깎이고 닳아서 무늬 그대로 둥글둥글 반들반들한, 그래서 그 자체가 수석이랄 수 있는 돌들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을 안내할 예정이었다. 그러면 홍도는 거의 다 돌아보는 셈이 되는 것이다.
“아직 안 가세요?”
마악 출발하려는 배의 선두갑판 위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빨간 반바지의 여자 두명이었다. 물론 윗도리는 각각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반바지는 서로 맞춘 듯 똑깥은 빨간색이었다. 둘 다 화장이 짙고 흰 피부에 뚱뚱한 편인 그네들은 남자 하나를 대동하고 있었는데, 목포에서부터 우리와 같은 배를 탔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안면을 익힐 기회도 필요도 없었고, 그저 흰 피부와 빨간 반바지가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제 낮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돌 때 우연찮게도 선두갑판에 함께 앉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서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줄 것을 부탁하고 먹을 것을 권하는 등 안면을 익히게 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워낙 바닥이 좁고 골목도 겨우 두 사람이 비켜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이 두 갈래 뿐이어서 해수욕장을 넘어갔다 오거나 음식점을 찾아 기웃대다 보면 금방 만난 사람 미안할 정도로 만나고 또 만나는 식이어서 그때마다 가벼운 웃음과 함께 인사말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일행이 또 오기로 되어 있어서요. 한 이틀 더 묵게 될 것 같네요.”
여자가 얼기설기 엮어 만든 풀꽃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머, 그래요? 참 좋으시겠네요. 그 풀꽃 목걸이로 환영식을 할려구요?”
“네. 오빠네 부부가 오기로 돼 있거든요.”
“부러워요..... 그럼 우리 먼저 가 봐야 되겠군요. 잘 놀다 오세요.”
배가 바지선 쪽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빨간 반바지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허벅지와 종아리가 유난히 하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