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구/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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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귀가 기다리며 편지쓰는 습관이 장원의 비결
권 영 숙
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 장원
작가 “숄름, 알레이햄”은 어린시절에 매일같이 새어머니한테 매를 맞고 욕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저녁마다 침대에 엎드려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느날부터인가 “알레이햄”은 잠자리에 들기전에 새어머니가 그날 자기한테 퍼부었던 욕설들을 하나하나 적어놓기 시작했다. 해가 가고 달이 감에 따라 그가 적어 놓은 욕설 기록은 무려 노트 한권 분량이나 되었다.
뒷날 그는 이 욕설기록장에 적은 어휘들을 알파벳 순서로 다시 배열하여 사전을 한권 만들었다. “새어머니의 어휘”라는 기묘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이 바로 그의 첫 작품이었다.
뒷날 그는 창작을 하며 야박하고 비열한 대사를 쓸 필요가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간편하게 “새어머니의 어휘”만 찾아보곤 하였다. 작가 “알레이햄”은 역경 속에서 기가 꺾이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오히려 분발하여 삶의 용기를 북돋웠으며 자기의 능동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던 것이다.
정감이란 사람이 주위의 사물, 자기자신, 또는 자기자신의 활동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의 체험인 것이다. 즉 주체가 외계의 자극에 대하여 긍정 혹은 부정하는 심리적 반응인 것이다.
정감은 사람의 사고와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감이 많은 사람은 사고와 활동이 활력에 넘쳐있으며 정감이 결여된 사람은 사고와 활동에 생기가 없다. 정감과 사람의 사고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권영숙씨!
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에서 “할아버지 친구들”이란 산문으로 장원을 했다.
주부백일장의 마당에서 걸출한 작품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우리주부들의 일상의 평범한 삶에서 소박하고 보편적인 것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면서 어떤 글을 표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될 줄 안다.
생활하면서 책을 가까이 하면서 읽는다는 것은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자신의 근원적인 음성들, 영혼의 소리를 들으면 족한 것이다. 많이 알수록 그만큼 의식이 분산되는 것이다. 지나친 지식은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기 쉽다. 앎의 무게의 짓눌려 자칫 사람이 왜소해지기 쉬운 것이다.
자기 전공분야 밖에는 세상물정도 모르는 꼭 막힌 사람들을 우리주변에서 얼마든지 보고 있는 것이다. 인격을 이루고 있는 보편적인 지성으로까지 심화되지 못하고 지식에만 안주할 때 그런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지식은 인간의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권영숙씨는 초등학교 6학년생 어린이부터 유치원생까지 둔 2남2녀의 젊은엄마다. 어린자녀들과 매일 생활하니 생각도 말도 느낌도 의지도 어린이화된 엄마였다. 장원된 작품 “할아버지 친구들”의 글속에는 동화적인 풋풋한 내음이 묻어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권영숙씨는 지난 추석날 4남매의 자녀들을 데리고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어린이들은 좋아라 뛰논다. 외할아버지 산소를 오르락 거리면서 신바람이 나서 메뚜기를 잡으며 놀고 있는 것이다.
권영숙씨가 그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얘들아, 산소에 올라가면 할아버지가 무거워 하실텐데. 그리고 메뚜기를 잡으면 할아버지 친구들이 없어져서 할아버지는 심심해 하실텐데.”
일상에서 자녀들에게 이해가 되고 그들의 사고력에 맞는 말을 골라 사용해야 훌륭한 가정교육이, 정감이 흐르는 가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흔히 ‘해라’, ‘하지말라’ 등의 부모의 권위적인 강한 힘을 실은 말로서는 요즘 자녀들에게 바랄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꼭 알아야 될 것이다.
글을 쓰든가 또는 어떤 일에 있어 우리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창조적 사고에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은 스스로 겁을 먹는 것이다. 겁을 먹으면 상상력과 독창적 정신은 사그라지고 만다. 신경을 쓰는 일은 흔히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는 것이다.
창조적 사고는 기존의 고정된 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진리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적지않는 난관이 존재한다. 이러한 난관을 과감히 헤어나기 위해서는 용기와 기백이 필요한 것이다.
권영숙씨는 전업주부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네 자녀들을 기다리며 또 직장에서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초조하고 조바심이 날 때에는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공허한 공간을 메꾸는 버릇이 있었다.
편지를 쓰는 횟수가 한번 두번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적으로 많은 편지를 쓰게 되었고 또 자주 일기장에 글을 옮기는 작업도 하게 되었다. 이런 편지쓰기, 일기쓰기로 주부백일장에서 장원에 오르는 영예를 가슴에 가득히 보듬고 돌아갔다.
어떤 일을 탐구하는 것은 스스로 땀흘려 일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순수하게 그 일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그 일과 나 자신이 하나가 되었을 때 슬기와 지헤의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리라 믿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