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판에서는 막바지 모내기가 한창이다. 여느 해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은 예년과 다른 분위기다. 올해 3~4월 전국적으로 발생한 이상 저온 현상으로 인해 과수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당진을 비롯해 아산과 예산 지역의 배 농가들은 개화기 중 강풍과 눈, 그리고 영상 1도 안팎으로 떨어진 기온으로 인해 꽃눈이 고사하거나 인공수분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전남 나주와 순천 지역에서도 배와 복숭아 등의 꽃눈 피해율이 10~5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모자리 육묘는 생육이 더뎠고, 봄 감자는 알갱이 크기가 작고 개수도 적게 열려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기후가 이상하다… 4월에도 ‘꽃샘추위’
2025년 봄, 당진 지역의 날씨는 봄 같지 않았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4월 1일부터 10일까지 당진에서 평균기온이 10도 이하였던 날이 무려 10일에 달했다. 특히 4월 2일은 -0.7℃의 극저온을 기록하며 과수 개화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같은 달 29일에는 이례적인 늦서리(만상)까지 내려, 봄꽃이 만개하고 수정이 이뤄져야 할 시점에 발생한 저온 현상은 배·사과·복숭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과수 품종에 수정 실패와 꽃눈 고사를 초래했다.
“열매는 커녕 꽃조차 저버려”
지역에서 배 농사를 짓는 한 농부는 4월초의 날씨를 잊지 못한다. 그는 “개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갑자기 서리가 내려 꽃잎이 갈색으로 변했다. 수정은 커녕 꽃이 나무에서 스스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과수원에서는 수확 가능한 열매 비율이 예년 대비 40% 이하로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은 인근 사과 농가도 비슷하다. 지역에서 25년째 사과를 재배 중인 또 다른 농부는 “이 시기엔 벌이 돌아다니며 수분을 도와야 하는데, 추워서 벌이 움직이지 않았다. 수분이 이뤄지지 않으니 꽃이 그대로 졌다”고 설명했다.

감자도, 벼도… 밭작물·수도작 피해 우려
과수뿐 아니라 감자와 벼 같은 밭작물과 수도작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지역 감자 농가들은 파종 직후 평균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며 싹이 트지 않거나, 지하부 썩음현상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송악면의 한 농민은 “감자의 알갱이가 작고 수량도 많지 않다”며 “감자밭의 잎과 줄기는 풍성해 보이지만, 땅속 감자는 예년보다 못한 작황을 보여 수확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벼농사도 타격을 입었다. 벼 육묘장에서는 저온으로 인해 모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재파종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모내기가 2주가량 지연되며 전체 영농 일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피해는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기상청이 발표한 ‘2025년 1~5월 기상현황’ 자료에 따르면 당진의 평균기온은 6.0℃로 평년보다 0.6℃ 높았지만, 전년도 대비로는 무려 2.4도 낮았다. 특히 4월 평균 최고 기온은 전년보다 3.3도 낮았고, 일조량은 950.1시간으로 평년 대비 643시간 이상 많았다. 햇빛은 충분했지만, 작물 생육에 필요한 기온과 습도 조건이 부족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관계 기관들은 “과수 피해는 일부 국지적이며 전체적으로는 미미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현장을 외면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농민은 “피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미미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보상도 어렵고, 보험 처리도 될지 의문”이라고 하소연했다.
“기후 적응형 농업체계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이상 저온 현상이 일시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라 상시적 재난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꽃샘추위와 늦서리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기존의 품종 중심, 관행농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기후 적응형 품종 보급과 스마트 영농 기반 확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농작물재해보험 제도의 실효성 강화와 함께, 저소득 소농을 위한 피해 조사 및 지원 체계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시대, 농업은 이제 생존의 문제
기후변화는 농업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봄철 이상 저온, 여름의 폭염과 가뭄, 가을 태풍, 겨울의 이상고온으로 이어지는 ‘기후재난의 연중화’ 속에서 농업은 더 이상 예측 가능한 산업이 아니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농업 현장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배 주산지의 저온 피해가 미미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농작물재해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농가 부담을 덜겠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은 인공수분 추가 실시, 영양제 살포, 방상팬 및 미세살수장치 활용 등을 권장하고 있으며, 피해가 잦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밀 조사를 실시해 복구 지원 및 향후 재해 대책 수립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후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 보험 제도 개선, 농업 재해 대응시스템 강화 등의 종합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