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상징하는 기지시줄다리기는 500년의 전통을 지닌 의식이다. 줄을 만들고 다리는 모든 과정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모여야 가능하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줄다리기에는 그런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총 6개의 이야기로 기지시줄다리기를 지켜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지면 보도와 영상으로 함께 기록될 예정이다.

※ 이 기사는 2025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취재·보도합니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국수봉 당제에서 종헌관으로서 제례에 참여한 안본환 이수자
국수봉 당제에서 종헌관으로서 제례에 참여한 안본환 이수자

안본환 이수자는 2007년부터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사무국장을 맡아 줄다리기뿐 아니라 기지시줄다리기 당제 실무를 함께 총괄해왔다. 그는 최근 약 5년간은 당제에서 축문을 낭독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오랜 시간 줄다리기와 당제를 현장에서 지켜온 안본환 이수자를 통해 기지시줄다리기의 첫 시작인 당제의 의미와 전통에 대해 들어보았다.

마을의 신성한 공간, 국수봉

기지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국수봉에는 오래 전부터 당집이 있어, 주민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안본환 이수자는 “국수봉은 줄다리기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신성한 장소”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께서 국수봉의 나무는 함부로 자르면 병이 나고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 말이 깊이 남아 있어서인지, 지금도 국수봉을 매우 신성하게 느낍니다.”

또한 그의 기억 속 국수봉은 오랜 세월 줄다리기와 함께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온 제례의 장소다. 그는 “초등학생일 때도 새해가 되면 아주머니들이 국수봉에 떡을 올리고 가족의 평안을 비는 모습을 자주 봤다. 당제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고 설명했다.

줄다리기 국수봉당제 등단하는 모습
줄다리기 국수봉당제 등단하는 모습

“당제와 줄다리기는 불가분의 관계”

줄다리기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당제를 지내는 전통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하늘에 고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줄다리기 전에 하늘에 먼저 고합니다.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의례를 올리는 것이죠. 당제와 줄다리기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당제 후 안본환 이수자와 구자동 보유자
당제 후 안본환 이수자와 구자동 보유자

유교·불교·민속신앙이 조화를 이루는 당제

당제에서는 모든 주민의 신앙을 존중하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화합의 제사로 만들기 위해 유교·불교·민속신앙이 함께한다.

“예전에는 불교와 민속신앙이 중심이었고, 이후 유교가 들어오면서 각 신앙이 공존하게 됐습니다. 당제에서 유교, 불교, 민속신앙이 함께하는 것은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지역 주민 모두를 끌어안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교는 하늘에 마을의 안녕을 고하고, 스님들은 부처님께 주민들의 평안을 기원해요. 무속은 지신밟기를 하며 땅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기지시줄다리기 당제는 유교식 제례로 시작된다. 줄다리기 보존회원들이 전승받아온 제례 방식에 따라, 먼저 당진시장이 초헌(初獻)관으로 신에게 첫 잔을 올린다. 이어 보존회장 또는 축제위원장이 아헌(亞獻)관으로 두 번째 잔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당주가 종헌(終獻)관으로서 제례를 마무리한다.

유교식 제례가 끝나면, 가학리 대성사와 가교리 신암사의 스님들이 불교 의식을, 이어 지역 무속인들이 민속신앙에 따른 의식을 진행한다.

당제 제례후 제관들과
당제 제례후 제관들과

당제를 지키는 사람들

기지시줄다리기 당제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무속적 요소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일부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당제를 민속문화로 받아들이고 지역 전통으로 존중하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 등재 이후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수자 수가 크게 늘었고,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까지 전통문화의 가치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로타리클럽, 의용소방대, 청년회 등 다양한 지역 단체들도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힘이 되어준다.

또한 안본환 이수자를 비롯한 당제 준비자들은 당제를 단순한 의식이 아닌, 지역의 안녕과 소망을 기원하는 엄숙한 제례로 여기며 이어간다.

“당제를 지낼 때마다 저는 마치 목욕재계하듯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합니다. 우리 지역주민 모두 건강하고, 각자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제례에 참석합니다. 아마 제관으로 함께하는 모든 분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수봉 당제에서 축관으로 참여한 안본환 이수자(가장 오른쪽)와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원들
국수봉 당제에서 축관으로 참여한 안본환 이수자(가장 오른쪽)와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원들
2021년 아산 우편전시회 줄다리기시연 날
2021년 아산 우편전시회 줄다리기시연 날

한편 안본환 이수자는 30대 초반부터 기지시줄다리기에 몸담아 어느덧 약 33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전통이 “생업 못지않은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줄다리기는 기지시와 창녕 영산, 단 두 곳뿐입니다. 그만큼 지키고 전승하기가 매우 어렵기에, 조상들이 이어온 이 소중한 유산을 후손들에게 잘 전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낍니다. 줄다리기를 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준비하게 됩니다.”

안본환 이수자
안본환 이수자

>>안본환 이수자는

-1961년 출생

-기지초, 송악중, 송악고 졸업

-2001년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이수자 지정

-제6대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장

-현 한국전통줄다리기전승단체 연합회장

아산외암마을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원들과 안본환 이수자
아산외암마을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원들과 안본환 이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