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덕읍 중동리는 600세대 1300여명이 거주하는 합덕읍의 중심지다. 이곳은 과거 ‘버그내 장터’로 불리며 충남 서부 지역 최대 시장으로 번영했던 곳이다. 현재도 합덕중앙시장과 전통시장 두 개의 시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올 10월 말 준공 예정인 도시재생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용대 중동리 이장은 “우리 마을은 합덕중앙시장과 전통시장 두 개의 시장이 있고, 10월 말 준공 예정인 도시재생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도시재생 사업은 5년 전부터 시작돼 다문화센터를 비롯한 각종 문화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등잔 바닥 지형, 천혜의 시장 터
중동리가 시장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한봉선(88) 노인회장은 “이곳이 등잔 바닥처럼 생긴 지형이라 물이 아무리 많이 와도 안 찬다. 그래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등잔 바닥 모양의 지형 때문에 홍수에도 안전해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소들강문을 끼고 있어 물길을 이용한 물물교환도 활발했다.
중동리 출신으로 합덕읍장을 지냈던 심명보 합덕읍노인지회 사무국장은 “옛날에는 서산, 태안에서도 합덕장을 보러 새벽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다. 천안을 비롯해 인근지역에서도 합덕장을 보러 와서 굉장히 번성했다”고 회상했다.

우시장에서 소 200~300마리 거래
과거 중동리에는 다양한 전문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우시장으로, 소가 200~300마리씩 거래됐다. 독전(항아리 파는 곳)에서는 항아리와 같은 독과 그릇들을 팔았다.
한봉선 노인회장은 “우시장에서 소를 팔아 돈을 벌면 서산 사람들이 구룡리를 넘어가는데, 승전무덤이라는 고개에서 그 돈을 다 털리기도 했다. 옛날에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니까 소매치기꾼들이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가마니 창고도 큰 것 두 개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농민들에게 가마니를 짜게 한 후 보관하는 곳이었다. “가마니 창고는 시장 끝에 떨어져 있어서 청춘 남녀들이 연애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며 한 회장은 웃었다.
문화와 유흥의 중심지
과거 중동리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와 유흥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영덕관, 미락관 등 기생을 둔 관이 여러 개 있었고, 합덕극장을 비롯해 극장도 2개나 운영됐다.
한 회장은 “면장님이나 군수님 등 지역 유지들이 많이 이용했다. 영덕관은 기생들 방이 12개나 되고, 제대로 교육받은 기생들만 두고 운영하는 제대로 된 관이었다. 미락관도 처음에는 해장국집처럼 시작했는데 잘 돼서 기생들을 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극장에서는 계몽 영화를 비롯해 당시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종종 상영됐다. “새로운 영화가 상영될 때면 영화간판을 크게 그려 놓는데, 어렸을 때 보기에도 그림이 잘 그린 것 같았다. 돈이 없어서 극장에 들어가지 못해도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볼거리였다”고 심명보 사무국장은 추억했다.

양조장과 은행까지, 경제력의 상징
합덕 양조장도 이 근처에서는 가장 잘 됐다. 장날이면 막걸리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좌판을 놓고 국수를 파는 장사도 잘 됐다. 연호 양조장과 합덕 양조장 두 곳이 있어 경쟁하며 발전했다.
목로집도 여러 개 있어서 장날이면 돈을 벌었고, 포장마차에서 국수와 막걸리를 파는 장사도 성황이었다. 위쪽으로는 먹거리 장사를 하는 곳들이 즐비했다.
“합덕에 조흥은행이 생긴 것을 보면 이 지역 경제권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당진은 그때 조흥은행이 없었는데, 합덕에는 조흥은행이 있었다”고 한 회장은 설명했다. 당진보다 합덕의 경제력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 생생한 증언
1938년생인 한봉선 회장은 일제강점기와해방, 6.25 전쟁을 모두 겪은 산증인이다. “1학년 때 해방됐다. 그전에는 만세가 아니고 만사이 만사이 하다가 1학기 끝날 무렵 해방되면서 태극기 흔들고 만세 만세 부르게 됐다”고 기억했다.
일본 학교인 소학교 분교도 있었다. “지금 합덕 목욕탕 자리가 그 소학교 분교 자리였다. 해방 이후 장가든 사람들, 문맹인들을 가르쳤는데, 우리 반에 아기 아버지도 있고 장가든 사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 회장은 “협신사 앞에서는 장날이면 책을 팔았다. 가마떼기를 뜯으면 길어서 그것을 깔고 여러 이야기책을 팔았다. 저녁에 노인네들이 와서 책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줬다”고 말했다.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어린 시절 놀이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무줄 놀이, 공깃돌 놀이를 주로 했는데, 고무줄은 속옷에서 몰래 빼내서 했다. 그러다 어머니에게 걸리면 회초리로 맞았다고.
또한 한 회장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비교하며 깊은 감회를 드러냈다. 옛날에는 모든 물건이 귀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이삭을 줍기도 하고 이삭을 주워 판돈으로 연필도 샀다.
“아들이 5살 때 라면이 처음 나왔는데, 라면 사달라고 하면 ‘밥 있는데 왜 라면을 먹느냐’고 했다. 지금 그 아들이 61세가 됐다. 그때는 모든 음식이 귀해서 쌀밥 한 숟가락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게 넘쳐나는데, 우리는 찬밥 한 숟가락도 아까워했다. 날짜 지났다고 음식을 버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어려웠던 시절이 바탕이 돼 오랜 세월 절약이 몸에 배었음을 보여줬다.
토탄 캐서 연료로 쓰던 시절
더욱 흥미로운 것은 토탄에 관한 이야기다. “송산리 쪽으로 가면 논바닥을 파면 시커먼 흙이 나온다. 그것을 말리면 나무 대신 연료로 쓸 수 있는 토탄이 된다”고 설명했다.
“시집 와서도 세숫대야 하나 들고 토탄 캐러 가서 마당에 말려서 연료로 썼다. 합덕은 산이 많지 않아 수암산까지 나무하러 다녔는데, 토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방앗간에서 겨를 쓸어 담아와서 절약하며 살았던 이야기도 있다. “방앗간에서 사면 1000원인데, 내가 직접 쓸어 담아오면 500원이면 샀다. 애 업고 수건 뒤집어쓰고 가서 겨를 쑤셔 담아왔다. 왕겨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살았다”고 회상했다.

시장 상인들의 자발적인 후원
현재 중동 경로당은 5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운영 시스템을 자랑한다. “합덕 37개 경로당 중에서 중동은 특별하다. 다른 곳은 한 달에 10번만 경로당 식사를 하는데 중동은 휴일만 빼고 매일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 회장이 자랑했다.
시에서는 두 명의 경로당 관리 매니저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시범사업도 진행중에 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시장 상인들의 자발적 후원이다.
생선가게에서 수시로 생선을 가져다주고, 정육점에서는 고기를, 떡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떡을, 과일가게에서는 매일 수박 한 통씩 제공한다. 또한 계란집에서는 계란을 몇 판씩 가져오고, 새우젓집에서는 새우젓이 들어오는 대로 한 통씩 가져다 준다.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반찬을 돌아가며 제공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김치를 한통씩 담아오고, 장아찌를 해오고, 채소가게에서는 무, 배추 등을 돈도 안 받고 갖다 준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부녀회의 활발한 지역 봉사
마을 부녀회에서도 마을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다. 박란수 부녀회장(6년째 활동)은 “마을 사랑 운동으로 꽃밭 가꾸기, 청소 등을 이장님과 함께 2년간 열심히 했다. 당진시 새마을 지도자연합회에서 자립상과 협동상도 받았다”고 자랑했다.
최근에는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도 나섰다. “비가 많이 와서 수해 복구에 나흘 동안 나갔다. 어르신들이 살림을 하나하나 모아온 것을 한순간에 다 잃어버리는 것을 보니 허탈했다. 또 목장에서는 송아지가 물에 차서 죽었고, 버섯집, 딸기밭도 피해를 본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박란수 부녀회장은 “합덕에는 연꽃방죽도 있고 솔뫼성당도 있어 성지순례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 이분들이 합덕시장에서 좋은 먹거리를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새 전환점
5년간 추진해온 도시재생 사업이 올 10월말 완료를 앞두고 있어 중동리 주민들의 기대감이 높다. 심명보 합덕읍노인지회 사무국장은 “도시재생 사업이 완료되면 지역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197억 원 규모의 국비가 투입된 큰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심명보 사무국장은 “현재 합덕의 인구가 과거보다 3분의 1로 줄었다. 시장에도 빈집이 많지만 주민들이 전부 소통해서 좋은 방안을 찾아 경제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표했다.
합덕읍 농촌 중심지 사업 위원장도 맡고 있는 김용대 이장은 “합덕읍에서 농촌 중심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역 발전을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합덕읍의 중심지 마을로서 협동과 화합이 잘 되는 마을, 타의 모범이 되는 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봉선 회장도 “이장님을 비롯해서 젊은 분들이 노인들까지 배제하지 않고 협동하려는 정신이 투철하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중동리가 협동 정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장님 뜻대로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