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능과 학습 능력을 겸비한 사회적인 동물이다. 세상은 변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변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아이러니함과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다. 모순은 변화와 익숙함의 교차점에서 발화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다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프로그램이나 제도적 장치 속에서 제작되거나 만들어지는 내용이 항상 같아야 하는데 같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모순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모순은 이렇듯 발화되어 우리 생활 속 깊숙하게 스며들어 동기화되거나 함께 접목되어 하나의 어법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우리의 인생도 모순 속에 젖어 살아왔다. 현실사회도 모순된 사회이거나 정직과 진실이 존재하는 공간이거나 다른 언어적 문화와 합치되어 동질화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렇듯 모순은 배타성이 동반되므로 이질적인 언어로 분류되어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면 현실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모순으로서의 효용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순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나타나는 관계성 오류이며 배타적인 성향이 있는 언어적 형태이므로 본질과 다른 결과물을 주장하므로 동기화되지 않고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이 있기에 진실이 증명되고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순된 사회여야 만이 모순을 알아갈 수 있고 모순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가 있으려면 디스토피아가 있듯이 그 이면의 세계에는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순은 사회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하나의 언어적 형태로 낯설게 다가와 존재하고 있으며 사회 통념상 양립하기 힘든 어구들의 나열이기에 그렇다. 의미가 상치하는 두 어구를 함께 사용하여 적절한 상황을 더욱 명료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이다.

언어의 감정적 조화를 통하여 내적 진실을 상황 묘사를 통해 다름이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표현하여 알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모순은 일상생활 과정에서 상황의 특이성을 강조하고 상반된 어휘가 대립하며 빚어낸 미학의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서 모순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하며 존재적 가치가 필요한 어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순을 접할 때 해석과 판단을 달리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순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기표, 기의 여러 형상과 구조의 어긋난 관계를 간파하고 분석하여야 모순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에 복잡하고 현실적으로 애매한 제도적 장치이다.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가 어떤 의도와 다르게 표현되거나 겉으로 보기에 잘못된 표현이거나 어긋난 관계에 놓인 표현을 자세히 살펴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진리와 진실을 간파하여 정확하게 증명하여 밝혀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 모순이다.

첫째, 모순은 역발상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모순은 일상생활 속에서 기존의 가치를 뛰어넘는다. 상식을 뛰어넘는 말들 속에서 벌어지는 문장의 구조체를 보다 효과적이고 부풀려 말하고 이해력을 높이고자 하는 논리적 모순의 전달체계이기 때문이다. 화자의 감정을 특정 대상에 대입시켜 대상이 미치는 영역이나 반전을 꾀하고 대변하여 역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한 표현 방식이다. 이러한 특정 정서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떠한 대상물을 통해 도와주는 관계보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역발상의 개념으로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하고 창출 해내는 방법이다.

사회적 매개체를 통한 지식의 이해와 느낌을 통한 감정의 전달체계가 모순을 통하여 서로 다른 의미를 목적을 가지고 표현하기에 적합한 활용 방법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접목하여 많이 쓰이는 것이다. 여기서 단지 쓰임을 통한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활용도에 따라 어떠한 가치가 발현되고 구조적 문제점을 통하여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첨예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모두 역발상에서 비롯되며, 서로의 뜻과 감정을 이해하고 느끼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단절과 소통은 서로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언어적이거나 상황적 모순을 통한 구조적 관점을 극복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그렇다.

둘째, 모순은 반전을 통한 진실의 표상이다. 반대의 개념을 들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하여 함께 공존하는 일원의 연결 과정이다. 자기 독백의 상황적 모순을 통하여 반전을 꾀하려는 내적 진실체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나’로 생각되는 사람 즉 독백하는 주체를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나‘는 물론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매개체이기도 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론적 매개체이거나 진실이나 진리를 내재한 언어적 기교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존재적 모순을 통하여 진실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허구로 창조한 타자 즉, 나인 것이, 반전을 통한 모든 움직이는 동체의 존재 원리는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존재 가치의 욕구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모든 언어도 이러한 바탕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는 독백체이기 때문이다.

셋째, 모순은 겉과 속 모습이 다른 이면적인 세계다. 전체적인 맥락 속에 모순은 자신만의 특별한 모습으로 비추어져 사회적 비판이나 부정을 밝히는 형식체계이다. 모순은 서로 다른 생각이나 주장, 행동 따위를 사회나 정치적인 이슈를 통해 비판의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언어나 문장을 통하여 비판적인 요소를 대중에게 전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모순은 전체라는 사회에 종속되는 요소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비판의식을 가진 언어체계가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 관계적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종교나 정치적 이념을 강조한 부분에서 비판적 의도로 활용되며 서로 반대의 이미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며 그 속에 형용할 수 없는 자신만의 내재적 감성을 지향하기도 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말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표현 방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가장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의 비판 수단은 카타르시스, 반전, 깨달음에서 온다고 했기에 우화나 가면극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에서 오는 친밀감과 또 다른 이면의 괴리감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정례화하려는 시대적 모순을 그리는 것이다. 개그 프로나 연설, 연극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표현 방식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시대를 비판하기 위한 가면극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는 모순은 언어적으로 불합리한 창작 유희다. 모순은 그로테스크나 낯설게 하기를 통하여 창작이란 불합리한 언어를 가지고 유희를 즐기거나 자신의 개발이나 틀 속에서 자유롭게 감동을 주는 구조적 문제이거나 상황적 현실이다. 생각과 사고를 불러내 어떠한 공간에서 이루는 창작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제도적 장치이거나 불합리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주체와 본능을 구축하는 질서에 기초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모순은 즐거움이 동반되지 않는 언어적 실체가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현실사회를 부정하는 시각적 관점에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기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순은 이처럼 생활 깊숙하게 침투되어 우리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