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여행이다.
조각가 배효남은 그 여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해왔다. 그의 제15회 초대 개인전 <우연한 여행자>가 지난 1일부터 31일까지 순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생성과 소멸, 존재와 순환’을 관통하는 조각·평면·설치 작업 20여 점을 선보이며, 40여 년간의 조형적 사유가 응축된 회고이자 고백의 자리로 읽힌다.
“이전에는 인생을 소풍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것이 우연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은 채, 보다 담백하고 진솔한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풀어낸다.

존재, 무의식, 그리고 희망의 상징들
이번 전시에서 배효남은 세 가지 주요 오브제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시간을 시각화한다.
깃털은 ‘존재’, 천의 층위는 ‘무의식과 기억’, 그리고 스테인리스 구(球)는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그는 “깃털은 ‘존재’ 자체를 의미하고, 천의 쌓임은 알 수 없는 세계 ‘무의식’, ‘꿈’, ‘잊힌 기억’을 표현한다”며 “스테인리스 구는 ‘미래와 희망’의 형상이다. 이 세 요소를 조합해 인간의 순환 구조를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은 물질의 물성을 넘어 정신적 풍경을 구축한다. 형태와 공간, 빛의 반사와 중첩된 질감 속에서 관람자는 존재의 흔적과 내면의 울림을 마주한다. 배 작가는 “나는 물질을 깎아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며 “조각은 나의 삶이자 솔직한 고백”이라고 말했다.

“기록되지 않은 존재들의 의미를 담다”
배 작가의 조각에는 개인을 넘어 인류의 연속성과 생명에 대한 성찰이 깃들어 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조상들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삶이라도 그 의미는 내 안에 남아 있죠.”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의 조형적 서사는 인간이 유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이어져온 ‘기억의 계보’를 품고 있다. 작가에게 조각은 단순히 형상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겸허함’을 기록하는 철학적 도구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개인적 상처와 시간이 스며든 작품도 함께한다.
그는 “유일하게 홍대에 합격했던 제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슬픔과 비애를 담아 한 달간 깃털을 조립하며 감정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그 고백처럼, 그의 조각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희망의 결을 새긴다.
또 다른 작품 ‘우연한 신화’는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회화적 조각이다.
“비가 오는 날 야외에 두었던 알루미늄 판이 5년이 지나 자연스럽게 탈색됐습니다. 그 위에 다시 붓을 들어 완성했죠. 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작가의 언어처럼, 이 작품은 시간과 자연이 함께 조각한 결과물이다. 의도되지 않은 흔적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자연의 창작’을 보여준다.

“조각은 나의 인생이고, 마지막 신념이다”
배효남은 예술가로서의 긴 여정을 “존재의 기록”으로 정의한다.
“젊을 땐 위대한 조각가가 되어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희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는 당진이라는 한반도 서쪽 끝 도시에서 묵묵히 조각을 이어온 지난 세월을 ‘자신만의 신화’로 남기고자 한다. 그의 손끝에서, 인간의 존재는 다시 깎이고 다듬어지며 또 하나의 ‘우연한 여행’을 이어간다.
<전시 일정>
기간: 2025.10.1.(수) ~ 10.31.(금)
장소: 순성미술관 (순성면 순성로 49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