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기획 기사 ‘기후위기 변화의 기로’는 중부일보, 낭주신문, 인천일보, 당진시대 등 일간지 와 주간지가 함께 참여한 공동 기획 취재입 니다. 이 기획을 통해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 위기 상황을 짚어보고, 기후 변화로 영향을 받은 국내 및 해외의 기후위기 사례를 보도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공업도시인 울산 남구에 가면 톱니바퀴 모양의 높은 기둥 형태로 된 기념탑을 볼 수 있다.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국내 중공업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 다. 탑 바로 옆에 설치된 망치를 든 남녀 노동자 동상도 공업 도시의 면모를 실감하게 한다.
탑에는 ‘제2차 산업의 우렁찬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산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이에 도래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지금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통하는 ‘검은 연기’는 과거에 긍정의 이미지 그자체였다. 소득 수준이 낮았던 그 시절, 하늘이 맑고 깨 끗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인식이 가득했 다.
하늘이 검을수록 잘 살던 시대였다. 공장 굴뚝 위로 솟아오르는 어두운 연기를 보며 국민들도 ‘잘 살아보세’ 기치 아래 희망찬 미 래를 꿈꿨다.
한국에서 환경단체가 탄생하게 된 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치 솟았던 1970년대에 환경운동이 공단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공해 문제 계기로 급성장…2000년대 중반부터 ‘위기’
공단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건강상 극심 한 피해를 입으면서 공해 문제를 해결하자 는 여론이 형성됐고, 1982년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설립됐다.
시민들이 조직한 소규모의 집단행동 체제 였다. 그러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본격 적으로 대규모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민 주적인 의식과 더불어 환경 파괴의 심각성 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국내 환경운동 의 몸집이 훨씬 부풀기 시작했다.
이후 환경단체는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수많은 회원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했고, 자금력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까지 도달했다.
단순히 활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각종 성 과도 냈다. 문민정부 때부터 환경운동단체 와 협의해 나가는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환경운동가들이 정부와 지자체 등에 참여하 는 기회가 증가한 게 가장 큰 이유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은 환경운동단체의 영 향력이 가장 막강했던 시기로 꼽힌다. 동강 댐, 새만금사업 등 대규모 국가 개발사업을 중단시키거나 철회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환경단체가 정부와의 협상 채널을 적극적으 로 활용한 결과였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환경운동은 위 기를 맞기 시작했다. 기존 회원이 이탈하거 나 환경운동에 필요한 자금이 줄었기 때문 이다. 조직의 권력화, 현장과 동떨어진 활동 등이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환경운 동 조직을 배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각종 환경 정책 입안 과정에 끼지 못했다. 환경단체들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했다. 접근성을 높여 시민들의 일시적 참여는 약간 증가하긴 했지만, 조직력 강화와 외연 확장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정부의 완강한 태도와 더불어 소수 활동가를 중심으로 뿌리내린 한국의 환경운 동 구조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다는 비판도 있다. 해외에 기반을 둔 환경단체와 달리 수 직적 구조 체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로 유 명해진 기후환경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 일’(Fridays for Future)의 한 지역 지부 관계 자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수평적인 조직 체 계를 유지하고 있어 환경단체의 고정 참여 자와 일시적 참여자 간의 힘에 큰 차이가 없 다”고 말했다. 이어 “단체 안에서 다양한 의 견을 모아 국가와 지자체에 촉구하고 대중 의 여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라며 “정확히 ‘아래에서 시작한다’는 표현이 맞다”고 설명 했다.
2020년대들어기후운동본격화…개선점도 산적
시민사회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앞서 2011년 환경단체와 노동조합, 진보 정당 등 이 모여 ‘기후정의연대’를 꾸린 것을 계기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이 시작됐다.
국내 환경운동의 전성기인 1990년대만 해 도 ‘기후변화’를 주요 아젠다로 꺼낸 단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2015년 채택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교통 의정서를 대신해 2020년 이후의 새 기후변화 체제를 수립하면서 국내 시민사회도 전 세계 흐름에 발맞추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은 몇 년간 다양한 환경운동 으로 나타났으며, 2020년대에 들어서야 환 경운동가들이 발간한 ‘기후정의선언 2021’ 도서가 출간되면서 구체적인 방향성이 잡혔 다.
그동안 기후위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탄소 배출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 만, 이때부터 기후위기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문제 인식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난·폭염 등 여파 는 늘 노동자·여성·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 를 가장 먼저 덮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전 지구적으로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 이면서도 빈곤층 등에 대한 해결책 방안 마 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회적 약자가 시민사회 안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도 더 많아졌다.
심지어 탄소 배출을 부추긴 자본주의를 기후위기 극복 차원에서 철폐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도 제기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이 커지자 국제 기 후운동의 흐름이 다소 급진적으로 변화했는 데, 한국도 이와 비슷한 결을 따라간 것이다.
국내 기후환경운동이 국제사회에서 후발 주자로 뒤늦게 출발했지만, 2020년 정부 등 의 ‘2050 탄소중립’ 선언에 일조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다만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정부 의 구체적인 대책과 장기적인 계획을 도출 하기까지는 시민사회의 더 많은 노력이 필 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선철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위 원은 이같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시민 사회의 대표성 부재’를 꼽았다.
김 위원은 “기후위기 대책을 논의하기 위 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시민사회의 대표 성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시민단체가 아닌 단체 관계 자 1명을 특정해 거버넌스에 참여를 요구하 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단체 내에서 자체 적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대표자를 선 출하지 않기 때문에 거버넌스가 잘 이뤄지 는지에 대한 감시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 다”고 지적했다.
삶과 직결된 ‘기후 불평등’에 초점…청소년 활동도 활발
이처럼 기후환경단체에 여러 개선점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정부의 정책을 비판 하고 국민의 기후위기 인식을 불어넣는 매 개체로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이다.
기후와 에너지 문제가 주류 운동 영역으 로 전환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노조 등과 의 연합으로 규모를 키운 집회와 행진 등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최근에는 수백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 여하는 ‘기후정의행진’이 기후운동의 핵심 활동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부터 매년 9월 열리고 있는 기후 정의행진은 기후위기가 초래한 ‘이상기후’ 가 점차 ‘기후재난’으로 악화함에 따라 ‘기 후 불평등’에 초점을 둔다.
지난 9월 7일 열린 올해 기후정의행진 슬 로건도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였던
만큼, 단순한 기후위기 극복이 아닌 기후 불 평등에 맞서는 존엄한 삶의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였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으로 기후위기를 ‘삶 의 문제’로 접근하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기후 활동이 활발 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 은 지난 2020년 3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청소년들의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 며 정부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소년들을 주축으로 정부에 낸 아시아 최초의 기후위기 소송이어서 사회적 파급 력도 상당했다. 어느 누구 섣불리 정부를 상 대로 소송을 내지 못했던 용기를 미래 세대 를 이끌 청소년들이 대신한 것이다.
그 결과 정부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 축 목표를 담지 않은 것에 대해 ‘헌법불합 치’를 이끌어내 일부 승소하는 성과를 이뤘 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시민사회의 여 러 활동 가운데 기후환경운동은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편”이라며 “기후 문제를 딱 딱한 용어로 풀어나가기보다 일반 시민들 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
공동취재팀 # 공동취재팀 - 중부일보 김종화·노경민·김유진, 태안 신문 김동이 기자, 낭주신문 노경선 기자, 인천일보 김 혜진 기자, 당진시대 이지혜 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