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사회 곳곳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모퉁이들이 있습니다. 누가 신경 쓰지 않으면 금세 어두워지고, 돌보는 손이 닿지 않으면 금세 차가워지는 곳들입니다.
저는 장기요양기관 요양원을 운영하며 그 모퉁이 속에 자리한 분들을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살아가는 분들일지도 모릅니다. 삶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 그러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삶의 속도가 많이 느려진 분들입니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걸음이 불편해져도, 그분들이 지나온 삶의 흔적만큼은 누구보다 깊고 단단합니다.
“나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 손을 잡고 저는 자주 답합니다.
“쓸모는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어르신이 존재하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의미입니다.”
돌봄 현장에서 배운 것은 사람의 가치란 스스로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삶이 현재의 우리를 만든 뿌리라는 것, 그 뿌리를 지키고 돌보는 일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을 저는 매일 새롭게 느낍니다.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많은 분들이 돌봄을 단순히 ‘욕창 관리’, ‘투약’, ‘식사 보조’ 같은 기술적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돌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이어주는 일입니다.
식사를 잘 드시지 않는 어르신에게는 영양섭취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날은 마음이 외로워서 한술 뜨기 힘든 날도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건 영양관리보다 먼저,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같이 천천히 이야기해볼까요?” 하고 옆에 앉아 주는 태도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손길이 닿으면 따뜻해지고, 말을 건네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요양원에서의 돌봄은 바로 그 느린 움직임을 함께 기다리는 일입니다.
한 어르신이 남긴 말, 그리고 제가 지키고 싶은 약속
얼마 전, 93세의 한 어르신께서 제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오기 전엔 참 무서웠어요. 내가 혼자 버려진 것 같아서.”
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요양원은 버려지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가족을 만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르신, 여기는 버려지는 곳이 아니라 잘 돌봄 받기 위해 오신 곳입니다. 이곳에 오신 순간부터 우리는 가족입니다.”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약속은 단순합니다. 어르신이 두려움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외롭지 않게 하루를 마무리하도록 돕는 일, 그 하루가 모여 삶이 됩니다.
지역사회가 함께 보아야 할 곳
요양원의 문은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지역사회와 가장 가까운 곳이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지냈던 동네, 오래 살았던 삶의 자리와 멀어질수록 그분들의 일상은 더 낯설어지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요양원이 지역사회와 연결된 열린 공간이기를 꿈을 꿉니다. 지역 주민들이 들러 차 한 잔 나눌 수 있고, 초등학생들이 편지를 적어 보내어 어르신에게 웃음을 드릴 수 있고, 은퇴한 주민들이 재능 봉사를 하며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있는 곳 말입니다.
돌봄은 결국 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계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
요양원을 운영하는 여성 원장으로서, 저는 매일 돌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어르신의 미소 한번이면 금세 가벼워지는 특별한 무게입니다.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삶의 끝자락에 있는 분들이 존엄을 잃지 않도록 지켜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각진 곳에 우리가 마음 한 조각만 더 보탠다면, 그곳은 금세 따뜻해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됩니다. 돌봄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렇게 작은 온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온기를 지키는 마음으로 현장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사회 모두가 우리 주변의 사각진 곳에 작은 온기 하나를 더 보태주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