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 전 아는 이 하나 없던 우강면 성원리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처음엔 낯선 환경에 경계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부부가 있다. 재능을 살려 이웃과 나누고 독거 어르신 곁을 지키며 지역과 함께 살아온 정화탁·김종찬 부부다.
은퇴 후 안산에서 당진으로
정화탁·김종찬 부부는 결혼 후 부산과 경기도 안양, 안산을 거치며 바쁘게 살아왔다. 김종찬 씨는 회사에서 공무 업무를 담당했고, 정화탁 씨는 공단에서 10년 이상 매점을 운영했다.
그러나 남편이 은퇴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은퇴 후 낚시를 하거나 집에서 종일 잠만 자는 남편의 모습에 정화탁 씨는 걱정이 앞섰다. 정 씨는 “이러다가는 사람을 버리겠다 싶었다”며 “시골에 내려가 상추라도 심고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충남 보령과 부여 일대를 둘러보다 서울에서 지내는 아들의 권유로 비교적 가까운 당진을 선택했고 2009년 우강면 성원리에 정착했다. 하지만 이주 초기의 삶은 쉽지 않았다.
친구도 갈 곳도 없는 농촌 생활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단다. 김종찬 씨는 “안산에 있을 때는 밤늦게까지 환했지만 이곳은 저녁 7시만 되면 동네가 조용해졌다”며 “식당도 일찍 문을 닫아 답답함을 느꼈다. 아내가 답답해 죽겠다며 안산으로 도로 가자고도 했다”고 말했다.
미싱 재능 살려 지역과 나눠
그러나 아내 정화탁 씨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지역 정보를 찾아다니며 당진풀잎문화센터 홈패션 강좌를 듣고, 합덕 노래교실에도 다니며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김종찬 씨는 “아내가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곳을 떠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 전했다.
정 씨가 나눔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남부사회복지관의 전신인 남부행복나눔복지센터였다. 2011년 정 씨는 미싱을 배울 수 있다는 센터의 현수막을 보고 합덕읍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그는 “평소 옷이 몸에 잘 맞지 않아 직접 만들어 입을 정도로 미싱을 할 줄 알았지만 전문적인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센터를 찾았다”고 설명했다.하지만 막상 현장을 찾아가 보니 오히려 정 씨가 다른 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센터의 요청으로 정 씨는 수강생이 아닌 강사가 돼 미싱을 전혀 해본 적 없는 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르침과 함께 재능기부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정화탁 씨는 “센터가 건물을 옮기며 개소식을 할 때 행주 몇백 장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고, 헌 청바지를 수거해 슬리퍼를 만들어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집수리 봉사를 담당하던 복지사의 제안으로 겨울철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방풍 커튼을 제작하기도 했단다.
정 씨는 “주변에서 모은 천을 활용해 미싱으로 커튼을 만들고, 완성된 커튼을 들고 직접 어르신 댁을 방문해 문 앞에 달아드렸다”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졌을 때는 면을 덧대 아기용과 성인용 마스크 수백 장을 만들어 나눴다. 그렇게 이곳에서 신나고 재미있게 지냈다”고 말했다.

논두렁밭두렁 들어가 지역 봉사
정화탁 씨는 2019년부터 남부사회복지관 9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주민조직 봉사단체인 ‘논두렁밭두렁’에 들어가 활동도 시작했다. 김현복 논두렁밭두렁 반장은 “처음엔 회원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진주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논두렁밭두렁은 매년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한다. 정화탁 씨는 풍선 장식, 노래 봉사, 하모니카 공연, 농작물 보호를 위한 바람개비 제작, 코로나19 방역 활동, 플로깅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독거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나들이나 실내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부부는 3~4년 전부터 복지관의 밑반찬 나눔 사업에도 참여하며 취약계층에게 밑반찬을 전달하는 행복배달부 역할도 맡고 있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신현명 남부사회복지관 과장은 “사회복지사로서 두 분이 대단하다”며 “개인 시간을 내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오랜 기간 지역을 위해 다양하게 활동하는 모습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1+1”이 된 부부
두 사람은 어디를 가든 함께한다. 활동적인 아내 정화탁 씨의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따라다니다 보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남편 김종찬 씨도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게 됐다. 김종찬 씨는 “원래 대화를 좋아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지만, 같이 다니다 보니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화탁 씨는 “내가 가는 곳에는 늘 남편이 따라와 일을 거든다”며 “이제는 주변에 ‘나를 부르면 2인분’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봉사를 다니며 힘을 써야 하는 일이나 아내의 손이 닿지 않는 일,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은 늘 남편의 몫이란다. 정 씨는 “남편이 내가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다 해준다”고 덧붙였다.

“지역과 더불어 사는 것”
부부는 자신의 활동을 ‘봉사’라 부르기보다 ‘지역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당시만 해도 마을 어르신들이 외지인의 유입을 반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퇴직 전 공무 업무를 했던 김종찬 씨는 동네를 돌며 크고 작은 수리를 도맡아 하며 자연스럽게 마을의 해결사 역할을 하게 됐다.
정화탁 씨는 “지나가다가 이웃집 처마가 내려앉거나 문짝이 비틀어지면 남편이 나서서 고쳐주곤 했다”며 “그러다 보니 ‘어디서 이런 사람이 왔느냐’며 고맙다면서 쌀포대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이사 와서 쌀 한두 포대를 사 먹은 이후로는 이웃들이 계속 쌀을 가져다줘 쌀을 사 먹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내 정화탁 씨도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계란과 고구마 등을 삶아 나누고, 부족해 보이는 물품이 있으면 직접 사다 주는 등 살뜰히 챙겼다. 겨울에는 직접 짠 모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김종찬 씨는 “경로당 어르신들이 아내를 보며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들어왔느냐’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그렇게 두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나누며 이웃의 마음을 열고 자연스럽게 마을의 일원으로 스며들었다.
앞으로 지역에서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묻자 정화탁 씨는 “계획을 세우면 삶이 오히려 빡빡해진다”며 “앞으로도 거창한 목표보다는 지금처럼 이웃이 필요할 때 돕고 어울리며, 회원들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면서 그럭저럭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행복배달부 활동은 앞으로도 꼭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