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애 찬드니 상점 대표
박지애 찬드니 상점 대표

누군가는 인도를 최고의 여행지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로 남긴다. 찬드니 상점을 운영하는 박지애 대표에게 인도는 한 번 다녀온 나라가 아니었다.

떠나고 싶어 했고, 잊지 못했고, 결국 일을 핑계 삼아 다시 돌아가야만 했던 곳이다. 인도 여행자에서 여행 길잡이를 거쳐 인도 원단을 판매하는 ‘찬드니 상점’을 운영하기까지 그의 삶은 인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

박지애 대표의 고향은 충청북도 단양이다. 4만 명 안팎의 소규모 지역에서 성장한 그는 학생시절부터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동네가 좁다 보니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고 누구 딸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다 듣고 살았어요.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고 싶었죠.”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오래 살아보는 삶을 꿈꾸게 됐고 고향을 떠나 서울의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 자금을 모았다.

박지애 대표가 인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박지애 대표가 인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300만 원으로 떠난 인도

박 대표가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인도를 택한 데에 큰 계획은 없었다. 2~3개월 이상의 장기 여행을 원했지만 모아둔 돈은 약 300만 원이었고 유럽이나 다른 지역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인도에 대한 정보를 찾다 남인도의 자급자족 공동체가 생활하는 ‘오로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인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오히려 용감할 수 있었던 박지애 대표는 그렇게 23세에 인도로 떠났다.

박지애 대표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찾는 북인도의 델리가 아닌 남인도의 첸나이로 입국해 오로빌을 찾아갔다. 하지만 기대했던 오로빌의 감흥은 크지 않았다.

“영어도 잘 못했고 적응이 쉽지 않았어요. 가짜 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물도 제대로 못 마셔서 매일 콜라나 사이다만 마셨어요.”

그는 더는 여행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느끼며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우연히 한국인을 만났다. 덕분에 델리행 기차를 탄 박 대표는 그제서야 약 두 달간 제대로 된 인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정말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며 “인생에는 정해진 틀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지애 대표가 인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박지애 대표가 인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여행 길잡이가 되다

첫 인도의 기억은 그에게 강렬하게 남았다. 매일같이 릭샤 요금을 흥정하며 다투던 일상,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들까지 모두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대표는 ‘인도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태에 빠졌다. 그는 “TV에서 인도 다큐멘터리만 나와도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지애 대표는 1년 뒤 다시 인도로 향했고 심지어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행사에 소속돼 여행자들의 이동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행 길잡이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로서의 여행은 달랐다. 두 번째 팀을 인솔하던 중 기차 안에서 70대 어르신이 여권과 돈이 든 가방을 통째로 분실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동 수단을 두고 팀원 간 갈등도 있는 등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인도 현지인들과의 마찰도 매일같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극심한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여행 길잡이 일을 그만두게 됐다.

합법적으로 인도에 갈 구실

이후 박지애 대표는 서울의 한 회사에 취직했고 제주도 여행 중 인도풍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르며 지금의 남편을 만나 서산에 정착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우울함과 무료함을 느꼈다. 박 대표가 찾은 탈출구는 취미로 하던 뜨개질과 퀼트에 이은 ‘찬드니 상점’이었다. 그는 “지인을 통해 인도 핸드 블록 프린트 원단 브랜드 ‘아노키’를 알게 됐다”며 “여행하면서 인도 원단과 수공예품에도 관심이 많았고 배낭여행자임에도 무거운 것들을 이고지고 돌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걸 수입해 팔면 일을 핑계로 인도를 오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핸드블록 프린트 체험을 하고 있는 박지애 대표
인도에서 핸드블록 프린트 체험을 하고 있는 박지애 대표

“인도 원단의 가치 알리고파”

2020년 무렵 박지애 대표는 손수건과 쿠션 커버 등을 소량으로 들여와 판매하다가 프리마켓에 참여하면서 사업을 점차 확장했다. 박 대표는 “야외에서 열리는 마켓이라 자연과 인도 원단이 잘 어우러졌고, 반응도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며 “이때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다양한 거래처를 직접 찾으며 원단 종류를 늘려 현재는 이불을 비롯해 파우치, 의류, 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후 2024년 말경 서산에서 당진으로 거처를 옮겼다. 박 대표는 “남편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어 교통과 접근성을 고려해 인근인 당진으로 이사하게 됐다. 이곳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찬드니 상점’은 수청동에 공간을 마련해 운영 중이며 스마트스토어를 중심으로 고객과 만나고 있다.

그는 찬드니 상점을 운영하면서 인도 거래처의 오배송과 약속 불이행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인도의 핸드메이드 감성을 사랑한단다.

박지애 대표는 “인도 제품이 값싼 물건이라는 인식이 아쉽다”며 “영국의 체크무늬를 비롯해 많은 직물이 인도에서 유래했듯, 인도의 면은 질이 좋고 수작업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 대표에게 이제 인도는 ‘애증의 대상’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많지만, 여전히 그립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고.

지난 20대부터 30대까지 수없이 인도를 오간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몇 년 정도 하고 싶은 걸 했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더라”며 “오히려 더 많이 다니지 못한 게 아쉽다”고 전했다.

◼위치 : 당진시 남부로 258-55, 3층(예약 방문)

◼ SNS : @chandni_market, 스마트스토어 ‘찬드니 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