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오가 왔다. 학생 시절, 선머슴같은 소녀였는데, 어느덧 50대 중반 중진의 동화작가이면서 역사연구가 김양오 선생이 되어 내 앞에 섰다. 털털한 행동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다. 고3 때 인하대학교 사학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두 손을 들고 말렸었다. 인문학, 그것도 역사학은 장래 배곯기 딱 좋은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직이나 공직이 안정된 삶의 답이라 믿던 시절이었다. 내 말을 들었다면 지금쯤 양오는 학교 교장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양오는 순수학문의 가시밭길을 선택했고, 이제는 어린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중진 동화작가가 되어 당당히 돌아왔다. 최선을 다했을 노력의 결과다.
김양오 선생이 면천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관에 찾아와 제안한 답사 주제는 여럿이었으나, 나와 동행한 곳은 안국사지와 백강 전투지였다. 안국사지는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다. 지금은 국보 몇 호, 보물 몇 호 하는 호수를 쓰지 않지만, 이곳에는 보물 100호인 석조여래삼존입상과 보물 101호인 안국사지 석탑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보물이 아니라 삼존불 뒤 배바위에 새겨진 두 개의 매향비에 있었다.
‘향을 묻는다’라는 ‘매향(埋香)’은 미륵신앙에 바탕을 둔 고려 후기 민간불교 의식이다. ‘향도(香徒)’를 조직한 주민들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향나무를 묻고, 그 사실과 희망 내용을 바위에 새겼다. 천년의 시간을 견딘 향나무는 ‘향 중의 으뜸(香中之王)’인 ‘침향(沈香)’이 될 것이고, 후손들은 침향을 피워 부처님께 올림으로써 큰 복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을 후손들만큼은 부처님의 도움으로 극복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처럼 수당리 주민들은 먼 미래 후손의 안녕과 공동체의 평온을 매향비로써 준비했다.
한편 배바위 앞에 있는 ‘면류관 쓴 불상’의 모습도 심상치가 않다. 면류관은 정치적 지배자인 왕을 상징하고, 불상은 신앙의 대상인 부처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왕을 부처님에 동일시함으로써 왕권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향비’와 대비하여 유추해 볼 때, 수당리 주민들은 ‘위대한 지도자’의 등장도 함께 염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삶의 고난은 신앙으로 치유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정신적인 부분에 제한된다. 현명한 정치 지도자의 등장이야말로 고난을 극복하는 큰 요인이 된다. 이 때문에 매향비에는 후손의 안녕과 함께 어진 지도자를 기다리는 주민의 마음도 새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매향비가 두 개임은 이 기다림을 더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답사는 백제부흥운동의 전쟁터인 백강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어깨 넘어 귀동냥으로 들은 지점들을 하나하나 안내하였다. 그것은 고대면 대촌리의 막 무덤, 석문면 삼봉리의 차돌백이, 장고항리의 마섬포구와 용천굴, 용무치, 왜목마을 등이었다. 석문면의 해안 지대를 바라보는 김선생의 눈빛은 학생 시절처럼 빛나고 있었다.
답사 후, 나는 백강 전투 관련 문헌을 뒤적이다 곧 한계를 느꼈고, 이 분야를 평생 연구한 박태신 선생님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백강 전투의 전개 지역이 금강 입구와 부안지역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당진 해역으로 완전히 정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백촌강 전투를 선양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한다. 박태신 선생님의 연구는 선친이신 박성흥님의 향토사 연구업적을 계승한 것으로 2대에 걸친 연구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박 선생님의 연구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넓고도 깊었다.

오히려 나는 663년 백제 부흥 전쟁과 1894년 청일전쟁이 1,231년의 격차를 두고 같은 당진 해역에서 일어났다는데 묘한 울림을 받았다. 특히 백제부흥전쟁은 신라와 당 연합군과 백제 고구려 왜 연합국이 어우러진 5개국 국제해전이었다. 모두가 동북아 정세를 급변시킨 결정적인 전쟁이었다. 이러한 전쟁은 총소리만 없을 뿐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생각되었다. 올해 ‘당진의 일꾼(지도자)’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사람 수만 쫓지 말고, 매향비와 ‘면류관 쓴 불상’을 바라보며 고려 시대 주민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찬바람에 다소 휑하더라도, 석문 앞바다에 와서 당진의 발전된 미래를, 그려봄직도 하겠다. 김양오 선생의 역사적 호기심은 나에게로 전염되었다.
김양오 선생의 내포 불교 전개 과정과 매향비, 그리고 백제부흥전쟁에 관한 연구에 응원을 보낸다. 특히 백촌강 전투를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서적을 탐독하였고, 이에 관련한 여러 가지 학설을 체계적으로 당진시대에 빼곡히 정리해 주었다. 더욱 다양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많이 활용하여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깊이 있는 학술연구가 이루어지기만 바랄 뿐이다. 아울러 김 선생의 우리 기념관 방문과 답사 동행은 당진지역 독립운동사에만 빠져있던 나를 깨우치게 하였다. 역사학의 길을 선택한 김양오 선생의 결정을 늦게나마 격려하며, 제자의 귀향을 고맙게 생각한다. 비록 1박 2일에 불과했지만….

>>글쓴이 김남석
계성초, 호서중·고를 졸업하고 충남대 사학과, 동대학원에서 한국사(문학박사)를 공부했다. 호서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로 정년퇴직하고 현재 면천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