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이웃의 아픔을 들추는 것이, 그들을 마주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을 낱낱이 써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의 소일거리조차 되지 못할 이야기를 위해 그들의 긴 밤 긴 날들의 사연을 이렇게 남긴다는 것이…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장애인 세가족’

“그나마 엄마는 장수술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일이네는 호서고등학교 후문 앞쪽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비록 다 쓰러져 가는 옴팍집과 거기에 딸린 손바닥만한 가게였지만 거기서 들어오는 얼마 안되는 수입은 용일이네 마당에 들어오는 한 줌 햇살처럼 그 가족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양식거리였고 그마저 없어지면 안될 아슬아슬한 생명줄이었다.

그러던 것이 원당택지개발로 가게가 헐리게 되면서 땅주인도 아니었던 용일이네는 얼마되지 않는 보상금을 일시불로 받는 대가로 실날만치나마 세상과 길게 이어질 수 있었을 양식거리를 잃게 되었다.

어려서 뇌성마비를 앓게 된 1급 지체장애인 용일이 아버지 김한선(48)씨와 1급 정신장애인 어머니, 그리고 정신지체 3급인 용일이, 이 세식구가 보금자리를 떠나 들어간 곳은 칠순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당진읍 우두리였다.

그때가 2000년 12월이었으니까 용일이네가 애를 태우다 읍내리를 떠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마을회관 앞으로 마중나온 용일이를 따라 우두리 회관 앞에서 길을 돌아 꼬불꼬불 들어간 끄트머리에 용일이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이 있었다.

용일이는 2년 전 그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예쁘면서도 무표정한, 아니 무표정이라는 얇은 가면을 쓴 어린아이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자전거를 타고 앞서 가면서 용일이는 눈길이지만 여기는 내가 잘 아는 곳이라는 투로 주인네다운 텃새를 은근히 자랑했다. 그래, 저애가 자랑할 게 뭐 있을까, 나는 용일이의 자랑을 받아주었다. 그때 나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용일이는 더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나를 기억한다고 대답했지만 정말 기억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5학년이었던 용일이는 어느 새 중학생이 되었다. 용일이는 눈길이 미끄러워 자꾸만 뒤쳐지는 내가 모퉁이를 돌 때 저를 놓칠까봐 잠깐 잠깐 돌아보고 멈추는 배려를 해주었다.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는 어떤 날.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맘때면 괜히 착해지고 싶어지는 마음 때문에 떠오르는 사람들. 사무실 책상머리에 메모만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용일이네로 전화를 한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뒤였다.

뒤틀린 입으로 간신히 안부를 묻는 용일이 아버지. 할머니가 받은 전화를 용일이 아버지가 건네받는 사이가 무척 길었던 것으로 봐서 용일이 아버지의 상태가 전보다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용일이 어머니가 장수술을 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오래 되었다. 살림이 엉망이 되었다. 나도 이제는 걷지 못한다...... 용일이 아버지의 말은 대략 이러했다. 수술비는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려다가 혹시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괜히 물었다고 후회될까봐 몇번 망설였다. 망설이다 물은 말에 대한 대답은 역시 ‘다못치렀슈’였다.

용일이 할머니댁은 읍내산골이었다. 허리가 꾸부정한 용일이 할머니가 대문 밖까지 나와 웃으며 맞아주셨다. 이 집에서 성한 사람은 용일이 할머니 한 분뿐이다. 하지만 칠순 하고도 셋을 잡수신 할머니 역시 노환으로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

말쑥하게 생기신 용일이 할아버지는 일흔 여섯에 다리관절을 잘 쓰지 못해 일어서지도 못하셨다. 다행한 것은 할아버지가 남의 땅에 앉은 남의 집을 개조해 가운뎃방이 밝고 따뜻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보건소에서 주는 약을 타다 잡숫고 계셨다.

“걱정유. 말허면 뭐휴. 첨엔 얘 어매 이렇게 버리나 했슈. 장을 1미터나 잘라 냈다는디 미음이건 뭐건 죄 위루 올려서… 모여 안즈믄 걱정이쥬. 아침에 일어나면 병원이 전화부텀 해보고… 한달내 그렇게 살유.”

용일이 할머니는 시어른이 가도 오셨느냐 한마디 없이 멍하기만 한 용일이 어머니가 아직도 딱하지만 정말 저렇게 못일어나면 어쩌나 무척 걱정하신 듯했다. 정신은 성하지만 뇌성마비로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아버지와 착하지만 정신이 성치않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용일이는 아직도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 그래서 용일이 아버지의 걱정은 용일이 어머니 못지않게 용일이에게도 쏠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어나 좀 걸을 만했는데 이제는 좀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팔도, 다리도 X자형으로 바깥을 향해 자꾸 틀리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이제는 약이 듣지 않는다고 절망적인 말을 할뿐이다.

원당지구 상가에 분양 우선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는 엄두도 못낼 형편이고, 몸은 이그러져 가고, 늙어가는 부모님께 의지할 수도 없고, 혼자 살아가기에 너무도 힘이 없어보이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용일이가 생각할수록 걱정이다.

‘앞으로가 걱정유…’ 용일이 아버지는 전보다 더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이야기했다. 누가 봐도 그랬다.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중간치료비 150만원은 할아버지와 용일이 아버지가 다니는 당진성결교회 형제자매들이 도와주어서 어떻게 어떻게 마련했지만 남은 치료비가 얼마일지 걱정이다. 그리고 이 가족 앞에 놓인, 용일이 앞에 놓인 생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석양을 걷는 성화가 걸린 벽에 공연히 눈을 돌리며 잠시 할 말 없는 무안을 숨긴다. 참 할 말이 안떠오른다.

“어째서 의료보험도 당진하고 천안하고 지역이 다르다고 혜택이 없대유?”

이래 저래 답답하기만 한 할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는 기자에게 하소연을 하신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까봐 미안할 뿐인 내게 할머니는 도리어 미안하다며 집앞 나무에서 땄다며 호두와 은행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아무 것도 줄 게 없어서 귀한 분들 오면 이런 거나 싸주신다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이웃의 아픔을 들추는 것이, 그들을 마주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을 낱낱이 써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의 소일거리조차 되지 못할 이야기를 위해 그들의 긴 밤 긴 날들의 사연을 이렇게 남긴다는 것이.

우리가 무슨 거창한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눈앞의 형제 한 사람의 삶보다, 나와 똑같은 하나의 우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오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일 뭘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느님도 용일이를 보고 계실 터인데 왜 삶은 이다지 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할 때 하느님이 도우실거라고 부디 말하지 말라. 바로 당신이 하느님인 것처럼 그를 도우라.”

김태숙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