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 편이 역사를 다시 불러낸다. 900만 관객을 넘어선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이후,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는 연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 임금 단종이 유배 생활을 했던 그곳은, 이제 비극의 현장을 직접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청령포는 분명 단종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단종의 비극은 과연 그곳에서 시작되었을까.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바로 현덕왕후다. 그녀는 세종의 큰며느리이자, 문종의 부인이었고, 조선 제 6대왕 단종의 어머니였다. 왕실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지만, 정작 그녀의 삶은 길지 못했다. 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어린 단종은 어머니의 품을 기억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그리고 그 현덕왕후의 출생지가 바로 충남 당진시 합덕읍 궁리다.
지금 궁리에는 ‘현덕왕후 출생지’라는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그 존재감은 조용하다 못해 미미하다. 세종, 문종,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위상에 비하면 아쉬움이 크다. 지역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함을 느끼는 이유다.
우리는 단종의 유배와 죽음을 기억한다. 청령포의 소나무와 강물, 어린 임금의 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삶에 드리운 또다른 그림자,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왕이었지만 부모의 품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아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서야 했던 소년의 운명은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의 흥행이 만들어낸 단종 열풍이 영월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그의 뿌리로, 그의 어머니의 삶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합덕읍 궁리 역시 그 역사적 서사에 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중심의 기록으로 남지만, 기억은 우리가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단종의 짧은 생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어머니 현덕왕후 이야기가 함께 조명되었으면 한다.
청령포를 찾는 누군가가 “단종의 어머니는 누구였을까?”라고 묻고, 그 답이 합덕 궁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뜻깊을까.
영월의 강바람이 당진의 들녘까지 이어지듯, 단종의 이야기 뒤에 가려진 어머니의 이름도 함께 불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역사를 온전하게 기억하는 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