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전에는 대가족 제도의 영향이 남아 있던 시기로 노인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가족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컷으며 따라서 대접을 받고 살았다. 그러나 사회 구조가 산업화 및 도시화 하면서 빠른 속도로 지행된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가치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마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마을 원로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면 마을의 젊은이들은 이에 따르는 것이 규범이었다. 그렇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노인들의 경륜은 일을 추진하는데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었고 노인들은 고집의 대명사로 비치게 되었다. 따라서 경로의식도 희박해지고 노인들이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평균수명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 관심사로 대두 된 것이다. 오늘날 경제 성장에 청춘을 바쳐 일해온 노인들이 정당하게 대우 받아야 하는 것은 기정 사실화 해야 한다. 이제 노인 복지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정부에서는 1981년 노인 복지법을 제정해 노인 문제에 대해 대처하게 되었다. 즉 사회의 구조적 변화 때문에 노인 문제가 제기 된 것이기에 국가나 사회가 헌법에 규정된 바대로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이법을 제정하게 된 취지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인간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회보장 차원에서 노후 보장 제도가 시행되었다. 국가나 사회가 실질적인 지원하에 이뤄지는 이들나라의 사회보장 제도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법에서 정하고 있는 규정들을 실제로 집행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지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능력껏 노력해 원하는 수준의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가에서 주도하여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최호산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 부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우리나라를 혼란속으로 몰아넣은 IMF사태로 주춤하게 되었다. 물론 지속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노인 복지보다 더 시급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과 청년들에 대한 지로 확장 등의 명제 앞에 노인복지를 확장하는데 그 한계성을 띄게 되었다.

그렇지만 노인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속에 가장 고통받고 있는 집단이 노인들이기 때문에 노인복지 정책은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진화되어야만 한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마련하여 시행해야 한다. 노인복지의 최고 정점은 재가복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족들의 간호와 보살핌속에 노후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노후복지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환경에서도 노인학대의 유형은 얼마든지 발견되지만 그렇다고 집단 요양시설과는 비교가 되진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낳고 기를 때 무조건 온정성을 다해 자녀들을 키웠다. 따라서 자녀들의 책무는 부모 봉양을 감사 보은의 개념에서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물론 그러한 사고가 몇 세대전과 비교할 때 미흡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삶을 밝혀주는 지침서로 널리 읽히는 ‘명심보감’의 <八反歌 八首>에서 이런점을 짚어주고 있다.

어린자식의 똥과 오줌같은 더러운 것은 그대 가슴에 싫어함이 없으되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흘리는 침은 도리어 덜러워하고 싫어하는 구나. 여섯자나 되는 네몸이 어디서 왔는가?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 몸이 만들어 졌거늘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어가는 부모를 공경하여 대점하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해 힘줄과 뼈가 닳도록 수고 하셨느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부모님을 소홀히 여기는 자식들이 남의 눈에 잘띄지 않으니 크게 소문날 일도 없지만 늙은 부모를 방치하고 수용시설에 맡겨 버리는 자식들이 많다하니 참으로 세태가 야속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부모님의 팔다리를 주물러 본적이 있는가? 부모님을 업어드린적이 있는가? 장성한 아들이 어느날 아버지를 업어 드리면서 “아버지 요즘에 많이 가벼워 지셨어요”하고 여쭈니 아버지는 “부모를 업는 것은 자식을 업는 것과는 많이 다르단다. 자식은 업을때마다 무거워지나 그무거운줄 모르고 부모는 업을때마다 가벼워지나 그 가벼워짐을 모른다”고 일렀다한다. ‘경로효친’ 이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이들의 시대정신이어야 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최고 가치의 덕목이다. 모든 노인들이 최소한의 복지틀 속에서 편안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