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500년 전통을 이어온 공동체 유산인 기지시줄다리기축제가 올해도 막을 내렸다.
올해 축제에서는 영상과 참여형 콘텐츠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지역 행사와 다를 바 없다”, “줄다리기 축제인데 정작 줄다리기를 느끼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개막식 진행 혼선과 해마다 반복되는 주차 문제, 축제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논란 역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수하 승리”…풍년 기원하며 본 행사 마무리
첫날인 9일 국수봉 당제를 시작으로 용왕제와 마을기원제가 진행됐으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로 인해 당제 행렬은 취소됐다.

개막식이 열린 10일에는 저글링과 풍선 공연, 키다리아저씨 등 △거리극 △유아부 줄다리기대회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예선전 등이 진행됐다. 이날 개막식에서 당진시장 업무대행 황침현 부시장은 “기지시줄다리기는 공동체가 힘을 모아 시작된 전통으로, 당진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속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세계인이 함께하는 문화유산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셋째 날인 11일에는 △전국스포츠줄다리기대회 △당진막걸리대회 △청소년 동아리 틴틴버스킹 △K-POP 페스티벌 등이 열렸다.
축제 대미인 마지막 날에는 당진시민줄다리기대회 본선과 본 행사가 진행됐다. 수천 명의 사람이 각각 무게 20톤, 길이 100m에 달하는 수상줄과 수하줄을 줄제작장에서부터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 시연장까지 옮기는 줄나가기에 참여하고, 수상과 수하을 비녀장으로 결합한 뒤 곁줄과 젖줄을 풀어 줄을 당기는 줄다리기가 진행됐다.
물윗마을(수상)과 물아랫마을(수하)로 편이 나눠져 다함께 줄을 당기며 한해의 풍요와 건강, 그리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 수상이 이기면 나라가 평안하고 수하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경기에서는 올해 수하가 승리하며 풍년을 기원했다.


새로운 콘텐츠 시도…변화 모색
이번 축제에서는 기존 프로그램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를 도입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올해 기지시줄다리기축제의 연출은 기지시줄다리기축제위원회(위원장 최홍섭)가 선정한 LVN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가 맡았으며, 공연 기획과 영상 제작, LED 기반 무대 연출, 현장 기록 콘텐츠 제작 등을 담당했다.
총연출을 맡은 박유주 감독은 “500년 전통의 줄다리기를 기반으로 현대적 공연 콘텐츠와 청소년 참여 프로그램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 축제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막식에서는 축제를 위해 제작된 영상 ‘결속의 심장’ 더무비와 이를 기반으로 한 주제 공연을 선보였다. 박동구 작가의 대붓 퍼포먼스 ‘줄이 깨어난다’는 줄다리기의 상징인 ‘줄’에 생명성과 서사를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어진 펄스컬렉티브(단장 손석희)의 ‘결속의 리듬’을 통해 고대 의식과 집단적 에너지를 현대적 안무로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였다.
박 감독은 “공연을 영화 서사를 담은 프리퀄 개념으로 구성해 향후 영상과 공연 콘텐츠로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셋째 날에는 K-POP 페스티벌이 열려 지역 청소년 공연팀의 무대를 시작으로 본 공연에서는 dj프린스, 나빌레라, 드랍, 디바엑스, 소울, 에스두잇, 오브제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체험형 공간 확대…시민 참여 중심 운영
이번 축제에서는 공간 구성에서도 변화를 시도하며 체험 중심 운영을 강화했다.
최홍섭 기지시줄다리기축제위원장은 축제를 앞두고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관광객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이 먼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방향을 잡았다”며 “쉼 공간과 체험 공간, 먹거리 공간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람 중심이 아닌 체험 중심 운영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위원회와 LVN은 단순히 보고 가는 축제가 아니라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기획 의도로 비교적 젊은 3040세대 가족 단위의 어린이와 청소년 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콘텐츠를 진행했다. 컵라면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공간과 쉼터를 마련하고, 짚풀로 만든 미로 ‘지푸리메이즈’ 등 어린이와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조성됐다. 또한 요리 대회와 SNS를 활용한 굿즈 이벤트 등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날 축제에 참석한 한 시민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 구성과 캠핑 분위기의 쉼터가 인상적이었다”며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정돈된 느낌이었고 체험 요소도 늘어난 점이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개막식 혼선·공연 의도 전달 부족 지적
하지만 이번 축제를 두고 아쉬운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개막식부터 매끄럽지 못한 진행에 대한 지적이 다. 개막식을 관람한 한 시민은 “개막식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행사인데, 당진시장 권한대행인 황침현 부시장이 많은 내빈과 시민, 타지역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무대 중앙에 단상이 마련되지 않아 사회자 옆에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며 “이를 보고 일부 시민들이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막식 공연 역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무대 바로 앞에서 축제 감독이 직접 공연을 지휘하는 모습에서 준비 부족이 드러났다”며 “당진을 대표하는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운영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은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축제에서 기본적인 진행조차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며 “행사를 맡은 업체의 준비와 역량에 대한 의문도 든다”고 말했다.
날씨 대응·주차 문제 ‘여전’
축제에서 매년 반복적으로 제기돼온 문제 역시 올해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해 행사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지만, 올해 역시 비로 인해 일부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으며 대응 부족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또한 안전 관리 미흡과 주차 문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축제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글이 게시됐으며, “바닥이 질척해 이동이 어려웠다”, “주차장 진입이 어려워 되돌아갔다”, “진행요원이 관람객을 밀어 아이가 다칠 뻔했다” 등 현장 운영과 관련한 불편을 호소하는댓글이 이어졌다.
셔틀버스가 운영되기는 했지만 1시간 간격으로 운행돼 이용에 불편이 있었고 정류장 안내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약자의 경우 행사장 주변 경사로로 인해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보였다.

“지역 고유 콘텐츠 부족”…정체성 논란
이번 축제에서는 지역 고유의 콘텐츠가 충분히 반영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정체성 논란도 이어졌다. ‘K-POP 페스티벌’과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등 다양한 콘텐츠가 운영됐지만, 정작 ‘줄다리기’라는 핵심 요소는 본 행사를 제외하고는 체감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한 시민은 “기지시줄다리기 본 행사 외 프로그램에서 줄다리기와 관련된 요소를 느끼기 어려웠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콘텐츠라 생각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기지시줄다리기축제는 ‘줄다리기’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축제로,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한 무형유산의 전승과 확산을 목표로 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 등재된 만큼 세계적으로도 의미가 큰 문화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축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지역 대표 축제라기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혼재된 동네 행사처럼 느껴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또한 SNS와 영상 콘텐츠를 활용한 시도가 있었지만, 콘텐츠 전달력과 활용 방식이 미흡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축제장을 찾은 한 시민은 “영상 콘텐츠가 축제장 어디에서 상영되는지 알기 어려웠고, SNS에서도 관련 내용을 쉽게 찾기 힘들었다”며 “유튜브 채널 역시 ‘기지시줄다리기축제위원회’, ‘페슬라이트’ 등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어 접근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축제 운영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와 축제위원회, 당진시, 외부 용역사, 관련 협회 등 다양한 주체가 관여하면서 행사 전반을 총괄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행사의 방향성과 콘텐츠 구성, 현장 운영 전반에 있어 일관성이 부족했던 배경으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당진시 관계자는 “행사의 방향성과 목표, 복잡한 운영 구조, 날씨 변수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지역 대표 축제로서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현장 이모저모]
‘수상’은 국민의힘…‘수하’는 더불어민주당?
‘화합의 줄’ 위에 드러난 정치색으로 눈살
한편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이번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에서는 일부 정치인과 정당 관계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마지막 날 본 행사에서는 수상줄과 수하줄에 각각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색상의 옷을 입은 인원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수상줄에는 붉은색 계열의 복장을 착용한 인원들이, 수하줄에는 파란색 계열의 복장을 입은 인원들이 줄 앞쪽에 자리하면서 시민들 역시 지지 정당에 따라 줄을 선택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소수 정당 관계자들은 양대 정당 사이에서 입지가 애매한 상황에 놓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장면을 본 시민들은 공동체의 화합과 결속을 상징하는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지적했다.


[미니인터뷰]

최홍섭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위원장
“지역 주민 위한 축제로 구성…후회 없는 축제”
“위원으로서 약 35년 동안 축제를 준비해왔는데, 올해 축제 준비를 시작하면서 ‘후회 없는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회 없는 축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안전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고, 관광객 만족도도 높았으며 공간 조성도 잘 이뤄졌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을 위한 축제’를 목표로 쉼터를 비롯해 거리공연, 먹거리, 체험 프로그램 등 즐길거리를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구은모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장
“내 일처럼 도와준 전승자 덕, 순조롭게 마무리”
“당제를 지내는 첫날부터 비가 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날씨가 좋아 마지막 날 본 행사에서는 수상과 수하 줄이 잘 올라온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볏짚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질 좋은 볏짚을 사용해 안전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임기의 마지막 해인 올해 공개행사를 전승자들이 내 일처럼 함께 도와줘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점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박유주 기지시줄다리기 축제 감독
“공동체와 결속의 가치,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 노력”
“줄다리기는 결국 ‘사람이 함께 힘을 모으는 행위’이고, 그 안에는 공동체와 결속이라는 아주 본질적인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가치를 더많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출에서는 전통 행사와 공연, 체험, 음악, 공간을 따로 두지 않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개막식에서는 대붓 퍼포먼스에서 시작해 주제공연 ‘결속의 리듬’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통합된 공연 구조를 통해 ‘결속’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한 K-POP 페스티벌과 청소년 참여 무대를 통해 젊은 세대가 이 축제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결국 이번 축제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세대가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연출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시도들이 쌓이면서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찾고,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축제’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아영·홍영자(당진1동, 60대)
“매년 축제에 오는데 올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큰 행사가 또 있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몰랐을 수도 있지만, 해마다 규모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난해나 재작년보다 관람객 수는 조금 줄어든 느낌입니다.”

육숙자·나영식(경기도 구리시, 70대)
“인터넷을 통해 축제 소식을 보고 방문했는데, 줄다리기 행사에 직접 참여해 줄을 밀고 당기니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줄다리기가 나라에 풍요를 가져다주면 좋겠습니다.”

홍영자(송악읍 반촌리, 80대)
“줄을 가져가면 행운이 온다고 해서 해마다 챙겨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줄을 가져가려고 합니다.”

토리 와델(미국, 송악중학교 외국어 교사)
“송악중학교에서 외국어 교사로 근무한 지 두 달이 됐는데, 이번 축제를 통해 직접 줄을 옮기며 함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고향에 있는 것 같은 감정이 들었고,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도 떠올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