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시가 농촌 읍면 13곳에 거점시설을 조성하는 데 국비·도비·시비 731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 2011년 황토권역센터(고대면)와 금초권역센터(신평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개 시설이 준공됐고, 신평 플러그인센터(60억 원)·합덕 마음모음센터(150억 원)·송악 누리센터(100억 원) 3곳은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잘 운영되는 시설이 있는가 하면, 일부 시설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만 문을 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731억 원을 들인 농촌 거점시설 사업, 시설마다 운영의 성과가 다르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지, 앞으로 이 시설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지 짚어봤다.
잘 되는 곳 따로, 문 잠긴 곳 따로
기자가 직접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일부 시설은 프로그램 운영 일정이 없는 날에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상시 개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모든 시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고대면 커뮤니티센터는 동아리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면서 마을관리소를 접목해 밑반찬 나눔, 빨래방, 이미용, 센서등 설치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배후 8개 마을에 전달한다. 솔뫼권역센터는 간단집수리·공구대여에 반려동물 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두 시설 모두 주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처럼 잘 운영되는 시설과 그렇지 않은 시설 사이의 격차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당진시가 작성한 운영 자료에도 시설 간 기록 밀도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느 시설은 프로그램 종류별 회기수를 상세히 기재하고 배후마을 서비스 항목도 구체적으로 적는 반면, 다른 시설은 기간과 항목만 표기하는 데 그친다. 통일된 성과 측정 기준이 없으니 자료만으로는 실제 운영 실태를 가늠하기 어렵다.
예산 많다고 운영 잘 되는 것 아냐
시설 간 격차는 투입 예산과도 무관하다. 준공 완료 시설 가운데 사업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면천면 활력바라지복지회관(55억 원)은 작은 목욕탕 운영과 지역 관광 연계를 특화 수익원으로 삼고 있지만 운영 콘텐츠 다양성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반면 사업비 27억 원으로 준공 완료 시설 가운데 가장 적게 투입된 솔뫼권역센터는 가장 촘촘한 배후마을 서비스망을 갖추고 있다. 예산 규모가 운영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치가 말해준다.
주목할 점은 2028년 준공 예정인 3개 시설의 사업비 규모다. 합덕 마음모음센터에 150억 원, 송악 누리센터에 100억 원이 각각 투입된다. 현재까지 준공된 10개 시설 사업비 합계(421억 원)보다 이 두 시설에만 250억 원이 집중된다. 앞선 시설들의 운영 격차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대규모 신규 시설이 들어서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격차의 근본 원인은 운영 주체의 역량 차이다. 당진시 스스로 이 점을 인정한다. 자체 자료에 “기존 운영위원회 체제로는 거점 활성화 사업 확대와 공모 응모에 한계가 있었다”고 명시했다. 같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운영 성과가 엇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익 구조 다변화 통한 자립 노력 필요
준공된 시설 대부분이 숙박·시설 대관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카페 운영도 여러 시설이 겹친다. 차별화 없는 대관 중심 수익 모델은 이용객이 줄거나 공실이 생기면 바로 운영난으로 이어진다. 프로그램 자체 수익이나 지역 자원과 연계한 수익 구조를 갖춘 시설은 드물다.
당진시도 이 한계를 인식하고 수익 모델 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황토·금초·솔뫼 3개 권역센터를 묶어 체류형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금초권역은 치유 농장 기반 6차산업 협동조합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미면 희망나눔센터는 특화 먹거리 개발과 장터 사업을 협동조합 수익사업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방향은 맞지만 이런 수익 모델이 실제 자립 기반으로 자리잡으려면 시간과 검증이 필요하다. 2028년 준공될 3개 대형 시설은 조성 단계부터 수익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전환은 시작, 자생력은 아직
당진시는 지난해 12월 운영위원회 체제였던 거점시설 5곳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수탁자를 바꿨다. 금초권역센터, 고대면 커뮤니티센터, 약시우강사랑채, 대호하늬바람센터, 정미희망나눔센터가 대상이다. 법인화로 국비 공모사업 참여 자격과 수익사업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은 진전이다. 실제로 전환 직후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서비스협약 시범지구에 우강면이 선정됐고, 올해 고대·대호지·약시우강 사회적협동조합 3곳이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그러나 공모사업 선정이 자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공모사업은 기간이 정해진 외부 지원이다. 지원이 끊긴 뒤에도 시설이 자력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가 진짜 시험대다. 당진시 자료도 이 한계를 솔직히 인정한다. "완료지구 자립을 위해 지구별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전문가 컨설팅과 역량 강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구조는 바꿨지만 그 구조를 채울 역량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주민이 중심돼야”
거점시설의 존재 이유는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드나드는 주민이다. 문이 닫혀 있는 시설은 하드웨어만 있고 사람이 없는 공간이다. 지속가능한 거점시설을 만들려면 숫자보다 주민의 발걸음이 먼저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주민 수요에서 출발하는 프로그램 설계다. 운영 주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잘 운영되고 있는 시설들이 주민 생활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집수리·빨래방·밑반찬처럼 일상의 불편을 직접 해소하는 서비스를 중심에 뒀기 때문이다.
시설을 먼저 짓고 나중에 프로그램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공간과 운영 체계를 설계하는 순서가 돼야 한다. 하드웨어에 731억 원을 쏟는 동안 정작 그 시설을 채울 사람을 어떻게 불러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했는지, 지금이 물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