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이르러 바야흐로 케이 컬처(K-Culture)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동방의 조용한 나라에서 이른바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우뚝 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문화의 강국으로까지 성공한 모범국가가 되었다.

또한 2023년 5월,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세계가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단계로 발전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고유자산인 동학농민혁명을 3.1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토대로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이는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민중들이 지향했던 개벽의 서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사 속에서 반듯하게 자리매김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금의 국제정세를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립된 국제질서가 온전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2022년 전면전으로 번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2026년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 대 이란의 전쟁으로 인해 유가 폭등과 물가 불안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의 무모한 관세정책과 경제적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그로 인하여 그동안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유럽국가들마저도 등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상호 존중의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즈음에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 부상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되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즈음하여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스탠스(stance)는 어떤 것일까? 그동안 무한경쟁을 강조하던 각자도생 시대의 종말이 작금의 현실이라면 그 대답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사람이 하늘이다.’라고 가르친 동학사상, 사람을 귀히 여기는 동학 정신을 공존과 공영의 윤리로 가르치고 일깨워줄 때가 도래한 것이다. 1894년 당시 동학농민군은 척양척왜를 주창하며 기포(起包)하였으나 침략적인 일본군들의 생명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하늘인 세상(人乃天)’을 꿈꾸고 있었다. 때문에, 동학농민군이 꿈꿨던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은 대한민국 선도할 때만 가능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신뢰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대한민국은 차원이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구한 역사가 곧 공존과 공영의 전통이며 우리가 만들어 가려는 개벽(開闢) 세상임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당진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전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숙지하고 이를 계승·발전시키려는 이는 드물다. 왜냐하면 이는 1893년 12월 고부민란보다도 먼저 합덕민란이 일어났으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산천포 접주 이창구가 활약한 지역이며, 여기에 동학농민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여 대승한 승전목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당진이었다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상들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깃발 아래 동학농민군이 되고 목숨을 바쳐 얻고자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으며, 남은 가족들이 이후에 짊어지고 살았을 힘겨움과 고통이 얼만큼이었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없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란 말만 하면 언뜻 떠오르는 전봉준 장군이나 우금티전투에 관해서는 이야기하는 이는 많다.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게 정읍이나 공주에서는 선제적으로 이를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고 매년 학술회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기념관이나 안내소를 운영하며 역사적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최근엔 인근 예산군에서도 관작리 전승지와 유적지 조성을 마무리하였고 태안군에서도 2021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건립하고 동학농민혁명사를 지역의 고유자산으로 인식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진시에서는 승전목전승기념사업회가 설치한 장승과 안내문이 전부이다. 승전목은 1894년 당시 일본군과 싸워서 승리한 괴산 아성전투 이후에 얻은 유일한 승전지이다. 그럼에도 승전목이 철저하게 훼손되는 것조차 막아내지도 못했다. 이러한 사실에 우리는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이미 타지역에 비해 너무 늦었고 너무 많이 부족하지만 우선 안내문 설치만이라도 시급하게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안내문 설치는 불살생불살물(不殺生不殺物)의 동학 정신이 충실하게 발현된 승전목 전승지와 동학군이 무혈입성했던 면천읍성 그리고 이창구 수접주가 도회하고 활동하였던 기지시 국수봉과 송악읍 월곡리, 송악산성 등에 선제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지난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었고 당선인들은 7월에 제9기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하여 이분들에게 부탁한다. 관민과 학자들로 구성된 당진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거버넌스(governance)를 조속히 구축해 주기를 요청한다. 이렇게 구성된 이들이 제대로 된 안내문을 신속하게 제작·설치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지원도 요청한다. 더불어 이들이 학술회의 개최나 시민들에게 당진의 역사를 알리고 계승·발전시키는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길 기대한다.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손을 댄 사람이 없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빠를수록 좋다. 서둘러야만 한다. 이제라도 의지를 보인다면 잃어버린 당진의 역사를 되살리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완벽한 역사적 자산으로 회복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작만으로도 역사적으로 소외되어왔던 당진 시민들의 문화적 자존감을 당당히 회복시켜줄 수 있을 것이며, 추후 당진시의 관광자원으로도 충분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민선 9기의 노력으로 문화강국에 걸맞은 지방자치 시대에 당찬 당진으로 거듭나는 것은 물론, 모두가 추구하는 글로벌 영역까지 분명하게 확장할 수 길이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