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철 우강면 송산3리 더풍골 경로당 회장
한상철 우강면 송산3리 더풍골 경로당 회장

광복절을 앞두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집마다 세워진 태극기 게양대였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어느 집 하나 빠짐없이 대문과 마당에 게양대가 설치돼 있었다.

우강면 송산3리에 위치한 더풍골은 25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전체에 태극기 게양대가 들어선 데에는 한상철 송산3리 더풍골 경로당 회장(80)의 노력이 있었다. 한 회장은 우리 민족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은 역사적인 날인 광복절을 앞두고 직접 게양대를 제작해 마을 전체에 나눴다.

피난으로 더풍골에 정착

한상철 회장의 고향은 황해도다. 6.25전쟁 당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피난을 내려와 더풍골에 정착했다. 한 회장은 “당시 피난민들은 흙으로 토담집을 짓고 가마니로 움막을 만들어 어렵게 살았다”며 “이 마을은 피난민들이 정착해 살아온 마을”이라고 말했다.

우강초등학교와 합덕농업고등학교를 다니며 지역에서 성장한 한 회장에게는 어린 시절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길을 가다가도 국기 게양식이나 하강식이 시작되면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어 경례했다고.

국기에 대한 애정과 애국심을 갖고 살아온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국가와 애국에 대한 마음이 점차 희미해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왔다.

‘우리 마을엔 태극기가 얼마나 달렸을까?’

이런 마음을 품은 그가 마을에 국기 게양대를 나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24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평소 국경일이면 태극

기를 게양했던 한 회장은 이날 저녁 마당에 걸어둔 태극기를 거두러 나왔다가 문득 ‘우리 마을에는 태극기가 얼마나 달렸을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는 직접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하지만 태극기를 게양한 가정은 전체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한 회장은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하고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에 허망한 마음이 들었다”며 “이북에서 피난 온 주민들과 그 자손들이 나라가 없었다면, 광복을 위해 희생한 선조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지금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민족이 광복절을 잊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조들의 희생으로 되찾은 광복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밤잠을 설친 그는 다음 날 경로당에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달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주민들은 “태극기가 없다”, “마땅히 달 곳이 없다”, “바빠서 깜빡 잊었다”고 답했다. 이에 한 회장은 늦더라도 2025년 광복절에는 모든 가정이 국기 게양에 동참할 수 있도록 자신부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집집마다 태극기 걸린 모습에 뿌듯”

한 회장은 2025년 삼일절을 앞두고 우강면에 요청해 소형 깃대와 태극기 세트를 지원받아 주민들에게 나눴다. 하지만 주민들이 각자 편한 곳에 국기를 달다 보니 가정마다 설치 방법이 달랐고, 마을 전체적으로도 통일감이 없었다. 이를 본 한 회장은 튼튼하면서도 규격화된 고정식 게양대를 직접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지난 7월 한 회장은 경로당 회원 염광옥, 최대식, 임한정 씨와 함께 25가구에 전달할 게양대 제작에 들어갔다. 당진과 합덕의 철물점 등을 찾아 스테인리스 파이프와 도르래 등 필요한 자재를 구입했고, 비용은 모두 한 회장이 사비로 부담했다.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경로당 앞에 임시 천막을 치고 가장 더운 한낮을 피해 오전과 오후로 나눠 일주일 동안 게양대를 만들었다. 완성된 게양대는 직접 각 가정을 찾아가 배부ㆍ설치했다. 한 회장은 “처음에는 태극기를 다는 것에 무심하고 건조했던 주민들의 반응이 게양대를 설치한 뒤 달라졌다”며 “각 가정의 대문이나 마당에 태극기가 제대로 걸리니 집이 훨씬 돋보인다며 주민들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직접 제작한 25개의 국기 게양대 앞에 선 한상철 회장과 염광옥, 최대식, 임한정 씨(왼쪽부터)
직접 제작한 25개의 국기 게양대 앞에 선 한상철 회장과 염광옥, 최대식, 임한정 씨(왼쪽부터)

더풍골 경로당 주민은 “게양대를 달고 나니 동네가 환해져서 기분이 좋다”며 “회장님이 더운 날씨에 사비까지 들여 어렵게 만들어줘 고맙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오늘날 국가와 국기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과 관심이 점차 줄어드는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나라를 잃었던 고통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국가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라며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에서 국기 게양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