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원 당진YMCA 사무총장당진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권중원 당진YMCA 사무총장당진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

<편집자주>

시민의창은 분야별 역량을 갖춘 당진지역 전문가들이 참여해 각 분야의 영역을 심층 취재, 보도하는 코너입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 보도합니다.

문화와 기록이 시민운동이 되기까지

당진의 시민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지역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공의 이익을 넓히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당진에서도 문화와 교육, 언론, 환경, 공동체 활동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참여가 조금씩 넓어졌다. 누군가는 소식지를 만들고 지역의 문제를 기록했으며, 사람들은 함께 책을 읽고 공연을 보며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시민운동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을 함께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 지역의 일은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1990년 12월, 당진의 최초 시민단체인 당진사랑단체연합회가 결성된다.

1994년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 설치에 반대하며 거리행진에 나선 당진군민들. 사진 출처=당진시대.
1994년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 설치에 반대하며 거리행진에 나선 당진군민들. 사진 출처=당진시대.

1994년의 경험, 시민조직과 연대로 이어지다

1994년에는 당진 시민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진사랑시민회는 정부가 중부권에서 발생하는 특정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을 당진에 설치하려 하자 주민들의 환경오염과 건강 피해를 우려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지역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은 채 중앙정부가 입지를 결정하려 했다는 점도 반발을 키웠다. 주민과 지역사회는 대책기구를 구성했고, 수천 명의 군민이 집회와 거리행진에 참여했다. 결국 정부는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의 당진 설치계획을 철회했다. 이 사건은 시설 하나를 막은 데 그치지 않았다. 정부가 결정한 일이라도 시민이 문제를 확인하고 함께 행동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남겼다. 지역의 문제를 알리고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이후 시민운동은 석문공단 유공 입주 반대운동과 당진항 지정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산업화와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새로운 일자리와 기반시설이 들어왔지만, 환경오염과 주민 생존권, 지역 정체성의 문제도 함께 나타났다. 시민운동은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당진에 필요한 개발인지, 개발의 이익과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중요한 결정에 주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묻는 일이었다.

현안이 이어지면서 이를 지속적으로 살펴볼 지역언론과 시민조직도 자리 잡았다. 1993년 11월 당진시대가 창간되었고, 1994년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의 성격으로 출범한 당진민주시민회는 1999년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로 명칭을 바꾸며 행정·의정 감시와 주민의 알 권리, 시민참여 확대 등으로 대중운동의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1999년 9월 창립한 당진환경운동연합은 석탄화력발전소와 송전선로, 산업폐기물, 대기오염과 생태보전 문제를 다뤘다. 2008년 창립한 당진문화연대는 공연과 영화, 인문학과 문화정책 모니터링을 통해 시민들이 만나 지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2009년 4월 창립한 당진YMCA는 청소년과 시민교육, 자원순환, 복지와 인권 등 생활과 가까운 영역으로 시민운동의 폭을 넓혔다. (참고자료 : 당진환경운동연합 「걸어온 길」, 당진YMCA 연혁·사업자료,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및 당진문화연대 관련 언론보도)

이들 단체의 출발점과 활동 방식은 달랐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행정과 권력을 감시했다면 당진환경운동연합은 산업화의 그늘을 살폈고, 당진문화연대는 문화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했다. 당진YMCA는 청소년과 생활운동, 복지와 인권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정 현안이 발생했을 때는 여러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나 시민연대체를 구성해 성명, 기자회견, 집회, 서명운동과 정책토론 등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활동 영역과 방식은 달랐지만 이들이 던져온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역의 중요한 결정은 누구를 위해 이뤄지는가. 시민은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행정과 정치권, 기업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책임지고 있는가. 당진 시민운동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환경과 개발, 지역의 정체성, 주민 생존권과 행정의 책임을 둘러싼 여러 현안에 대응해왔다. 그 가운데 지역사회에 비교적 큰 영향을 남긴 주요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업의 철회보다 더 오래 남은 것들

모든 시민운동이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정부나 기업의 계획을 바꾼 사례도 있었지만, 오랜 활동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시민운동의 성과를 사업을 막았는지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감춰진 정보가 공개됐는지, 주민이 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됐는지, 행정과 기업이 더 많은 설명과 책임을 지게 됐는지도 살펴야 한다. 보호구역 지정과 정보공개, 공론장을 남긴 것, 시민이 지역 문제를 직접 질문하고 행동한 경험 역시 중요한 성과다.

당진의 시민운동은 이렇게 지역을 말하고 지켜왔다. 그러나 과거의 성과를 돌아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오늘의 시민운동이 시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과거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현대제철 저감장치 고장 청산가스 유출사고 규탄 기자회견(2019년 5월 2일)
현대제철 저감장치 고장 청산가스 유출사고 규탄 기자회견(2019년 5월 2일)

독립성·전문성·지속가능성, 시민운동의 다음 조건

시민운동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정당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다. 시민단체는 특정 정당을 돕거나 반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시민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책임을 묻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단체는 정당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서 ‘위에 있다’는 것은 정당 위에 군림하거나 정치를 대신한다는 뜻도, 권력이나 지위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 시민의 삶과 공공성이라는 더 높은 기준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정당에도 종속되지 않은 채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독립성만으로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비판에는 충분한 근거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들으며, 판단이 잘못됐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당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활동에 대한 국민의힘 충남도당의 고발은 1년 반 동안 행정권력의 감시활동에 대한 불만과 6.3지방선거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다. 시민운동 활동에 있어서 이해관계자의 고발과 고소가 끊임없이 작용한다.

시민발의 당진시 시민공론장 시의회 부결 관련 기자회견 (2024년 9월 27일)
시민발의 당진시 시민공론장 시의회 부결 관련 기자회견 (2024년 9월 27일)

시민운동의 향후 과제

이러한 책임 있는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전문성이다. 오늘의 시민운동에는 열정뿐 아니라 행정자료와 예산, 조례와 법률을 읽고 복잡한 정책을 시민의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살피며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산의 문제를 비판했다면 더 나은 사용 원칙을 제안하고, 행정절차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까지 내놓아야 한다. 시민운동은 반대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결국 대안으로 답해야 한다.

독립성과 전문성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를 뒷받침할 지속 가능한 기반도 필요하다. 활동가 개인의 헌신에만 기대서는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기 어렵다. 활동가 교육과 경험의 전수, 활동 이후의 평가가 꾸준히 이뤄져야 하며, 당진 시민운동의 기록을 다음 세대와 나눌 수 있는 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과 활동가가 지역 정책을 함께 배우고, 시민의 평가가 실제 행정과 예산에 반영되는 구조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시민사회의 독립성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지원 방식과 운영 주체는 지역사회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하되, 행정이 시민단체를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형태이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지키면서 공익활동과 시민교육, 지역의 기록과 청년 활동가 양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마련돼야 한다.

당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출범 기자회견(2025년 4월 28일)
당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출범 기자회견(2025년 4월 28일)

당진 시민운동의 다음 과제는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데 있지 않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준을 지키고, 더 정확한 근거와 책임 있는 태도로 시민의 신뢰를 얻으며, 전문성을 바탕으로 비판을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여기에 활동과 기록, 사람을 이어갈 기틀까지 마련될 때 시민의 참여는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 당진시민운동의 활동 양상은 과거처럼 당진지역의 기존 시민단체와 결합하여 연대하기도 하고 분화하여 개별적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며 주요 이슈에 대한 헤쳐모여 식으로 합종연횡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제언으로 1990년대 당진 시민운동의 씨를 뿌리고 지역을 지키며 헌신한 시민운동가들의 활동을 고찰하여 재평가하고 향후 시민운동가와 활동가의 재교육, 역량강화를 통한 지도력 발굴과 지속적인 활동가 양성과 지역사회의 이슈와 다양한 사안에 대한 관심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진 시민운동은 과거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는 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