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는 본래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한 사람의 삶과 마주하기 위해 신뢰가 뿌리내려 작은 변화가 싹트기까지는 충분한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의 일은 ‘효율적’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당사자 가정에 한 번 방문한다고 해서 마음이 열리지 않고, 손을 내민다고 닫혔던 문이 곧장 열리는 법도 없다. 거절당하고도 다시 찾아가고, 침묵 곁에 묵묵히 앉아 있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야 비로소 ‘관계’라 부를 만한 것이 서서히 생긴다. 결국 관계는 사회복지의 본질이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회복지사는 ‘시간과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기다림이 필요한 일을 기피하고 있다. 번거로운 과정은 생략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보다는 수치와 성과를 선호한다. 사회복지 현장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찾아가 곁에 머무는 시간보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는 시간이 더 많다. 정해진 지침 안에서 움직이는 편이 안전하고, 실적이라는 데이터로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예비 사회복지사인 학생들에게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실습조차 ‘치열하게 배울 곳’이 아니라 ‘수월하게 마칠 곳’을 먼저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회복지사 선배들조차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려면 자주 마주 앉아 사례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만들며, 그 안에서 작은 단서들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관계의 시간’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회의는 늘었으나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은 줄었다. 행정 업무에 쫓겨 동료의 사례를 함께 들여다볼 여유가 없고, 외부 모임은 ‘나중에 여력이 될 때’라는 단서를 달아 미뤄둔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각자의 책상으로 고립되어가고 있다. 관계를 강조하는 직업이 정작 동료와의 관계는 가꾸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후배는 선배의 말이 아니라 선배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다. 그래서 선배인 우리가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과 관계 맺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 안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철학이 있는 실천’이 무엇인지 말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과정을 그려 본 경험, 한 사람의 삶에 온전히 시간을 들여본 기억, 그 시간을 후배 사회복지사에게 전할 수 있는 언어 등이 슈퍼비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슈퍼바이저는 단순히 업무를 배분하고 점검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행정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근거 기반의 기록과 평가는 사회복지의 전문성을 지키는 토대이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다만, 무게중심이 행정으로 너무 기울었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 책상 위의 서류는 어떤 사람의 어떤 시간 위에 놓여 있는가?”, “이 보고서 한 장을 위해 우리는 그 사람을 몇 번이나 진심으로 만났는가?”

우리는 빨라지는 시대를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복지마저 속도만을 좇는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람’이다. 빠르고 쉬운 것이 미덕인 시대일수록 느리고 번거로운 일의 가치를 더 고집스럽게 이야기해야 하고,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일수록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존재는 더 귀해지기 마련이다. 후배들이 우리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완벽한 행정 처리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가는 발걸음과 침묵을 견디는 마음과 결국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는 존중의 태도다. 그러니 선배인 우리는 더디더라도 더 많이 만나야 하고, 번거롭더라도 물어야 한다. 실패하면 함께 성찰하면 된다. 속도의 시대에 사회복지를 지키는 힘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곁에 서 있으려는 ‘철학 있는 선배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