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시사철 1300℃에 달하는 뜨거운 불과 마주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쇳물을 달구고 망치로 두드려 하나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이광석 방짜유기장이다.
40여 년간 유기 제작에 전념해 온 그의 눈빛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다. 전북 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이수자로 활동해 온 그는 2024년 당진시 향토무형유산 방짜유기장 보유자로 지정돼 방짜유기를 전승하고 현대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생명의 그릇 ‘방짜유기’
이광석 보유자는 방짜유기를 ‘살아있는 그릇’, ‘생명의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일정한 비율로 합금한 뒤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해 만드는 전통 금속공예다. 재료의 상태에 따라 다시 달구고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등 장인의 손끝에서 수없이 이어지는 단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방짜유기가 완성된다.
특히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보유자는 “방짜유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율”이라며 “비율이 조금만 어긋나도 깨지거나 터지고 제대로 늘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확한 비율만 맞춘다고 좋은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뜨거운 불 속에서 재료가 어느 정도 달궈졌는지, 지금 망치를 내려쳐도 되는 상태인지 장인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 너무 늦거나 빠르게 두드리면 재료가 제대로 늘어나지 않거나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보유자는 “타이밍을 잘 맞춰야 깨지지 않고 잘 늘어난다”며 한 작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망치질이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천 번에 달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40년 전 유기공방에서 시작
순성면 양유리에서 태어난 이광석 보유자는 면천초와 면천중을 졸업했다. 성인이 될 무렵 먼 친척의 제안으로 서울에 올라가 유기공방에 들어가면서 처음 유기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공방에서는 황동과 동, 백동 등을 활용해 관광 기념품을 제작했다. 이 보유자는 “획일적이지 않아서 재밌었다”며 “다양한 것들을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종덕 선생의 가치 좇아”
그러던 40대 초반, 전라북도 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보유자인 이종덕 선생을 만나면서 정통 방짜유기의 길로 들어섰다. 공방을 운영하며 알게 된 이종덕 선생과는 처음에는 의견을 나누고 협업하는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스승이 가진 장인정신에 매료됐다.
“방짜유기의 매력도 대단하지만 그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이종덕 선생님의 철학, 그분이 갖고 있는 가치가 너무나도 존경스러웠어요. 선생님 밑에서 배워가며 지내도 내 인생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이종덕 선생의 연구실장으로 들어간 그는 경기도 시흥부터 전라북도까지 스승을 따라다니며 방짜유기의 전통과 기술을 배웠다.

공방 유지하며 빚만 늘어
서울과 경기, 전라북도 등 전국을 다니며 스승의 밑에서 기술을 익히던 그는 약 10년 전 고향 당진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배운 전통을 고향에서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종덕 선생님께 제가 더 늙기 전에 고향에 가서 공방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왔어요.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이라도 고향에 가서 한 사람에게라도 공유하고 알려주고 싶었죠. 당진에도 깊이 있는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뒤의 삶은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정통 방짜유기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그의 고집은 생활의 어려움으로 돌아왔다. 공방 유지비와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현장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등 고된 노동을 이어가면서도 공방을 놓지 않았지만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빚만 늘어갔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공방을 처분하고 공장에 취직하는 것까지 고민했다. 그때 전환점이 찾아왔다.
“보유자 지정되며 1년만 더”
2024년 이광석 보유자가 당진시 향토무형유산 방짜유기장 보유자로 지정된 것이다. 이광석 보유자는 “이제 정말 그만두려고 하던 판이었다”며 “그런데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당진시에서도 이렇게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주는구나. 1년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유자 지정은 그에게 다시 공방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됐다. 이전에는 공방을 찾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술과 경력을 일일이 설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당진시가 지정한 향토무형유산 보유자’라는 이름이 그가 걸어온 길을 대신 설명해줬다.
여기에 새로운 판로도 열렸다. 약 2개월 전 가수 던의 유튜브 채널 ‘던워리비햇님’에 소개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 보유자는 “딸이 주변에 전통 공예를 하시는 분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가수 던의 글을 보고 내 사연을 보냈다고 하더라”며 “제작진이 촬영을 와서 딸의 진심이 느껴져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촬영 당시 가수 던은 이광석 보유자가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온라인 판매처 등을 제안했다. 이 보유자는 당진시 문화예술과 진용찬 주무관의 도움을 받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한 새로운 판로도 마련했다. 그에게 다시 한번 방짜유기를 계속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방짜유기는 숙명적인 것”
우연히 들어간 유기공방에서 시작된 인연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삶 그 자체가 됐다.
“방짜유기는 숙명적인 것이라 지금 와서는 제 인생이에요. 제 마지막 꿈은 이곳 당진의 공방이 참여형 소비자, 즉 ‘프로슈머(Prosumer)’들의 성지가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릇을 사는 것을 넘어 이곳에 와서 직접 망치질을 해보고 자신만의 그릇을 만들어 가져가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만든 방짜 숟가락 하나가 대를 이어 가문의 가보가 되고, 전통이 우리 삶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그것이 장인으로서 제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 나눔이자 소명입니다.”
◼ 공방 위치 : 당진시 신평면 샛터로383-75
◼ 문의:010-3893-5420
◼ SNS : eupseong_notjeon,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읍성놋전 이광석 방짜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