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스님(자료사진)
명진스님(자료사진)

신평면 금천리 출신인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이 지난 22일 불의의 사고로 입적했다. 향년 76세다. 명진스님은 이날 제주 서귀포시 인근 해상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1950년 당진 신평면 금천리에서 태어난 명진스님은 송악중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했으며,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으며 본격적인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등을 맡아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불교계를 대표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를 지낼 당시에는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1000일 동안 매일 세 차례 1000배를 올리는 수행을 이어갔다.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 문제를 두고 조계종 총무원과 대립한 뒤에도 종단 개혁과 쇄신을 향한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2017년 제적 징계를 받았으나 소송 끝에 승소해 올해 초 승적을 회복했다.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현장을 찾아 아픔을 겪는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명진스님은 출가 이후에도 고향 당진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왔다. 모교인 송악중학교를 찾아 특강을 열어 후배들과 소통했으며, 종종 고향을 찾아 선영을 참배하고 지역 사찰을 방문하며 고향을 향한 애정을 보였다.

명진스님의 외사촌인 박성두 씨는 통화에서 “고인은 평생 불교의 맑은 쇄신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온몸을 던진 올곧은 수행자였다”며 “평생 약자의 편에 섰던 고향 당진의 큰 어른이 갑작스럽게 떠나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편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지난 25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열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불교계를 비롯해 종교계와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인사들과 신도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골은 다비식을 거쳐 49재를 마친 뒤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