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의 품격은 얼마나 강하게 명령하는가보다 얼마나 넓게 듣는가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데에는 신념이면 족하지만, 다른 견해를 끝까지 듣는 데에는 지성과 절제, 그리고 자신의 판단 역시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겸허가 필요하다. 경청은 지도자의 미덕을 장식하는 수사가 아니다. 현실을 오독하지 않고 공동체의 방향을 바로 세우기 위한 통치의 핵심 역량이다.
오늘의 사회는 어느 한 사람의 경험과 식견만으로 온전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경제와 외교, 안보와 복지, 세대와 지역의 이해가 촘촘하게 교차하고 시민의 요구 또한 세밀하게 갈라져 있다. 지식과 정보 역시 사회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 이제 지도자의 능력은 모든 해답을 혼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지혜를 불러 모으고 충돌하는 이해를 조율하여 더 나은 공적 판단으로 이끄는 데 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이 원리는 다르지 않다. 권한이 커질수록 말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그만큼 듣는 귀는 더욱 넓어져야 한다. 대통령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자신의 판단이 조직 전체의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순간, 행정은 활력을 잃고 권력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만 바라보게 된다.
한 사람의 독주가 지나치게 커지면 합주는 무너진다. 지휘자의 해석이 악단 전체를 압도하는 순간 다른 악기의 고유한 음색은 희미해진다. 반대 의견은 불협으로 밀려나고, 신중한 조언은 결정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처럼 여겨진다. 처음에는 일사불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견이 사라진 조직은 강한 조직이 아니라 오류를 발견할 능력을 잃어가는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권력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만 모이면 판단은 쉽게 확신으로 굳어진다. 같은 견해가 되풀이될수록 지도자는 자신이 옳다는 믿음을 강화하지만, 정작 그 믿음을 검증할 기회는 줄어든다. 내부의 박수가 커질수록 외부의 탄식은 멀어지고, 보고 싶은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생긴다. 민심은 들리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깊은 물의 흐름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방향을 바꾸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물살이 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경청은 단순히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예절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는 지적 용기다. 회의와 간담회가 아무리 잦아도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소통의 형식을 빌린 독백에 불과하다. 진정한 대화는 불편한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 속에서도 필요한 진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통치와 행정에는 결단이 따른다. 모든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적 지도력일 수는 없다. 때로는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해야 하며, 당장의 인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책임져야 할 결정도 있다. 그러나 충분히 듣지 않은 결단은 용기가 아니라 독선으로 기울기 쉽다. 깊은 숙의를 거친 결정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충분한 설명을 거친 정책은 사회적 생명력이 길다. 경청은 결단을 지연시키는 망설임이 아니라 결정의 오류를 줄이는 가장 정교한 이성의 장치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지도자는 공동체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과 주민으로부터 한시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아 공동의 일을 맡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도력의 성숙은 자신의 권한을 과시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권한의 한계를 자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고 권위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지혜를 구할 줄 아는 지도자에게 더 깊은 신뢰가 쌓인다.
국정도 지방행정도 한 사람을 위한 독창회가 아니다. 현악기의 섬세함과 관악기의 깊이, 타악기의 절제와 때로는 쉼표의 침묵까지 제 몫을 다해야 음악은 비로소 완성된다. 지휘자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소리를 더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음색이 고유함을 잃지 않은 채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도록 이끄는 것이다.
독주는 순간의 갈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시간은 박수가 멎은 뒤에도 이어진다. 오래 남는 지도력은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목소리를 들었는가로 평가될 것이다. 권력이 자신의 음량을 낮추고 미처 들리지 않았던 국민과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 때, 갈등은 조율의 가능성을 얻는다.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가장 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공적 의지로 엮어내는 지도력이다. 독주가 멈추는 곳에서 비로소 합주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합주의 깊이가 곧 한 시대의 정치와 행정이 지닌 수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