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이 늙어가고 있다. 사람이 떠난 마을에는 빈집이 늘고, 아이가 사라진 학교는 문을 닫는다. 논밭은 그대로인데 그 논을 갈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농촌을 살릴 방책보다 농지를 묶어 두는 규제에 더 익숙하다.
그 한가운데 농지법이 있다.
농지법은 농지를 보전하고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게 하고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은 만들어진 까닭만으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현실이 바뀌었다면 법의 쓰임도 다시 물어야 한다.
오늘 농촌의 위기는 농지를 사려는 사람이 넘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농사지을 사람이 줄고, 농촌에 살 사람이 줄고, 논밭을 사려는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곳이 늘고 있다.
나는 이제 농지법을 몇 군데 손질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농지법은 폐지해야 한다. 농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때 쌀 한 가마니 값은 양복 한 벌 값에 견줄 만큼 귀했다. 농사는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든든한 업이었고, 논밭은 자식을 가르치고 노후를 준비하는 밑천이었다. 농민에게 논은 단순한 생산수단이 아니라 평생 땀으로 일군 재산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도시의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몇 년 사이 수억원이 오르는 일도 드물지 않다. 반면 지방의 논밭은 제값을 받기는커녕 매수자를 찾기조차 어려운 곳이 적지 않다. 평생 농사를 짓다가 늙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민이 논을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하려 해도 거래가 막혀 있다면 그 재산은 이름뿐인 재산이 되고 만다.
도시민에게 아파트가 재산이라면 농민에게는 논밭이 재산이다. 그런데 왜 아파트는 자유롭게 사고팔면서 논밭은 살 사람의 자격부터 따져야 하는가. 왜 도시의 부동산에 돈을 넣으면 투자라 하면서 농촌의 논을 사면 먼저 투기부터 의심하는가.
농민의 재산권이라고 해서 가벼울 수 없다.
농지를 자유롭게 사고팔도록 하자는 주장에 곧바로 “그러면 농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반론이 뒤따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소유와 이용을 한데 묶어 보는 오래된 생각이 깔려 있다.
농지를 사고파는 것과 농지를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도시 사람이 논을 샀다고 그 논이 도시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농지를 샀다고 다음 날 공장이 들어서는 것도 아니다. 주인이 바뀌어도 논은 그 자리에 남는다.
따라서 원칙은 명료할 수 있다.
소유와 거래는 자유롭게 하고, 전용은 엄격하게 관리하면 된다.
식량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우량농지는 국가가 분명하게 정해 보전해야 한다. 농지를 주택이나 공장, 상업시설로 바꾸는 행위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 불법 전용과 난개발은 더 강하게 단속해도 좋다. 그러나 농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농지의 소유와 거래까지 지나치게 묶어 놓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논에 투자한다고 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촌에 새로운 돈이 들어오고 거래가 살아나면 땅의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농민이 평생 일군 재산을 필요할 때 제값 받고 처분할 수 있는 길도 넓어진다.
무엇보다 지금 농촌에 절실한 것은 사람과 자본이다.
농촌에는 젊은이가 들어와야 하고 새로운 농업을 시도하는 사람도 들어와야 한다. 농업법인과 첨단농업, 농산물 가공과 유통, 관광과 휴양 등 새로운 산업도 자라야 한다. 농촌 밖의 사람이 농촌의 땅에 관심을 갖고 자금을 넣을 수 있는 길까지 막으면서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늘 지방소멸은 통계표 속의 미래가 아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 손님이 없어 사라지는 가게가 이미 우리 앞에 있다. 고령 농민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논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는 마을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농촌의 가장 큰 위험은 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논을 지킬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떠난 들판에 농지만 남겨 놓는다고 농촌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농민 없는 농지보전, 주민 없는 농촌보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농지법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농지를 지키기 위해 소유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지방소멸이라는 전혀 다른 시대에 들어선 지금은 정책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농지법을 조금씩 고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농지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농지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농지의 취득과 거래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하되, 국가적으로 보전해야 할 농지는 별도의 제도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틀을 바꾸어야 한다.
농민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땅을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고, 사고 싶은 사람은 정당한 값을 주고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시장에서 농민의 재산도 도시의 재산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아파트값은 치솟는데 논값은 내려간다. 도시의 자산은 불어나는데 한평생 논두렁을 밟아 온 농민의 재산은 갈수록 값어치를 잃는다. 그러면서 농민에게 농촌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농촌을 살리고 싶다면 먼저 농촌으로 들어오는 길부터 열어야 한다. 사람이 들어오고 돈이 돌고 땅이 제값을 받아야 마을에도 다시 기회가 생긴다.
농지법은 이제 폐지해야 한다. 논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농민의 재산을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논을 지키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그 논을 지킬 사람이 농촌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라진 뒤에 남겨진 논은 더 이상 농촌의 미래가 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