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평화대사협의회는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이라는 이념을 지향하며, 당진지역 100여 명의 회원과 함께 매년 뜻깊은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작년 백두산 탐방에 이어 올해는 일본 히로시마 일대로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우리 단체 탐방의 가장 큰 특징은 탐방과 함께 세미나 프로그램인데, 이번 탐방은 특히 한국에 거주하며 한일문화비교학을 전공한 일본인 무토 교수님이 이동 중 마이크를 잡고 강연 형식으로 이야기해 주었는데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새로운 역사적 통찰을 안겨주었다.

무토 교수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들은 일본의 역사는 자못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다. 빙하기 이후 대륙과 분리된 지 불과 1만 년 남짓한 일본열도의 역사는 곧 한반도와의 끊임없는 교류와 갈등의 연속이었다.기원전 야요이시대 한반도로부터 농경문화 유입, 기원후 가야로부터의 철기 수입과 고분시대의 개막, 그리고 나라현을 중심으로 한 야마토 정권의 뿌리가 백제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지배권력의 변천사—신라계의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막부 그리고 백제계의 아치즈. 모모야마 막부(풍신수길), 다시 신라계의 에도 막부(도쿠가와), 그리고 다시 백제계의 천황과 야마구치현의 조슈번 바탕의 백제의 혈통과 갈등 구도를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일본 열도를 둘러싼 역사의 이면에는 가야·신라계와 백제계 두 세력의 주도권 싸움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백제 몰락 후 일본으로 건너간 세력이 ‘고토(古土)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한반도를 침략했던 비극적 역사의 근저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실제 우리가 방문했던 야마구치현은 백제 성왕의 아들 임성태자를 조상으로 모시며 한때 천황가에 비견될 만큼 번성했던 오우치 가문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조선의 성리학적 유교 전통 속에서 조상에 대한 예와 역사적 의식을 엄격히 교육받아 온 우리와 달리, 일본인들은 상대적으로 자국의 역사 교육에 소홀한 편이다. 함께 동행했던 루미꼬 회원이 이런 내막은 전혀 교육받은 없다고 생소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일본서기> 등 자국 역사서가 가진 숨기고 싶은 사정들 때문이라 유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자인 무토 교수가 낮은 자세로 자국의 정체성과 솔직한 역사를 우리 앞에 고백했을 때, 우리는 단순한 미움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 탐방의 본래 취지는 히로시마 원폭으로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 추모의 화환을 올리고, 애국가 4절과 <고향의 봄>을 부르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영령들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정 끝에서 우리는 뜻밖에도 한일 양국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뿌리를 공유한 하나의 역사적 운명체였음을 확인했다.

일본의 지배계급 주체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들이었고 그들의 침략 역사 또한 비극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 존재했음을 이해할 때, 오랫동안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미움은 희석되고 상생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토 교수가 보여준 진정성 어린 다가섬은 한일 관계가 새로운 차원에서 출발할 수 있는 귀한 마중물이 되었다. 일본 탐방을 마치고 모든 회원들은 ‘세계평화’를 외쳐온 우리가 이제는 그들을 넓은 품으로 안고, 과거의 아픔을 넘어 한일 양국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때임을 마음속에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