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대한민국 농촌이 직면한 위기는 어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다. 인구 고령화와 지역 소멸, 농가 소득 감소와 농업 생산성 저하가 겹치면서 농촌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 등 기후위기가 일상화되며 농업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이제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농업인에게는 생산량과 소득을 좌우하는 현실 속 위험이며, 농업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지역 농·축협에는 금융 위험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변수다.
농가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 농업 투자가 위축되고 대출 상환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이는 농·축협의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지역 경제의 자금 공급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농업과 축산업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농촌 지역은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단계적 과제와 과감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농·축협 스스로 ‘편중 리스크’를 경계하고 고객 기반을 다변화해야 한다. 농·축협 상호금융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특정 고객군이나 업종에 여신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편중 리스크’다. 농업인과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구조는 지역 금융기관으로서 큰 강점이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지역 산업 기반이 약화될 경우 금융 위험이 급격히 커지는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기후변화 등으로 농업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특정 고객군에만 위험이 집중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농·축협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고객과 사업 영역을 합리적으로 넓혀 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둘째, 시대를 반영해 금융기관의 형태가 아닌 ‘건전성’ 중심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현재 금융체계는 기관 성격(은행,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에 따라 업무 범위와 규제를 기관별 기준에 얽매여 일률적으로 달리 적용한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단순한 법적 형태만을 기준으로 업무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방식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금융업의 핵심은 “금융기관의 법적 형태나 간판”보다 “얼마나 건전하게 수행할 수 있느냐”에 있다.
셋째, 체질 개선을 거쳐 스스로 경영 효율성과 위험 분산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 제도 개편과 더불어 농·축협 자체의 변화도 병행해야 한다. 우선 신용사업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이용 범위를 변화된 지역 인구구조에 맞춰 합리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농촌 조합과 도시 조합 간의 자율적인 협력과 합병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강점을 공유하고 통합과 사업 재편을 이뤄낸다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경영 효율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이는 모든 조합을 획일적으로 합치자는 뜻이 아니라, 지역 특성과 여건에 맞춰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을 마련하자는 의미다.
넷째, 이렇게 확보한 금융의 힘을 농촌의 미래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농·축협 금융 구조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금융기관 자체의 수익 창출이 아니라, 건강해진 지역 금융의 자금이 다시 농업과 농촌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드는 데 있다.
청년 농업인의 안정적인 정착, 스마트 농업 및 첨단 기술 도입, 기후변화 대응 시설 투자, 농가 경영 안정 자금 등이 지역 내에서 막힘없이 공급돼야 한다. 농촌이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공간을 넘어 청년이 정착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삶의 터전이 되려면 금융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끝으로 정부와 금융당국 역시 농·축협을 규제 대상이 아닌 지역 경제를 함께 지탱하는 ‘금융 파트너’로 바라보아야 한다. 건전성을 갖춘 조합에는 넓은 업무 자율성을 부여하고, 자율적 협력과 통합을 촉진하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농촌이 소멸하면 농협도 존재할 수 없지만, 건강한 금융 생태계가 살아 있다면 농업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농·축협 금융 구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지금이 바로 농업을 살리고 지역을 지키는 금융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시작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