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 그리고 삶의 희망입니다
“아빠, 잘 다녀오셨어요?”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저녁, 나는 장에 갔다가 돌아온 아버지한테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는 “오냐”하고 나를 번쩍 안았다가 내려놓았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을 앞으로 쏘옥 내밀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왼손으로 주머니를 한참 뒤적인 끝에 ‘선물’을 꺼내주셨다. 씹으면 단물이 쏙쏙 나오는 껌 한 통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장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껌을 사오셨다. 아무리 술에 잔뜩 취해도 껌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장날이면 장에 갔다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렸다가 껌을 씹곤 했다. 나는 단물이 다 빠져도 계속 씹고, 밤이 되면 벽에 붙여놓았다가 이튿날 다시 떼어서 씹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십오년쯤 흐른 지금, 나는 아버지보다 더 자라나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런데 내게 껌을 사주시던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 계신다. 2000년 12월29일에 목뼈를 다쳐 팔다리가 마비된 것이다. 아버지의 오른손은 어려서 화상을 입어 손가락이 한데 엉겨붙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제 왼손마저도 숟가락조차 쥘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목뼈 고정 수술 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다리와 팔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햇살이 우리 가족을 비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의사가 아버지한테 말했다.
“할아버지. 과자 같은 걸 집어서 드시는 연습을 하세요. 그러면 나중에 숟가락도 쥘 수 있을 거예요.”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비치는 듯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병원에 갈 때면 어김없이 과자를 샀고, 아버지는 과자로 손목과 손가락 힘을 키우는 재활훈련을 해나가셨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왼손으로 과자를 쥐고 입가로 가져가 드신 것이다. 그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한 달쯤 뒤에는 과자를 제법 집어드실 수 있게 되었고, 서너 달 뒤에는 왼손에 붙들어맨 숟가락으로 밥도 떠서 드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요즘 딸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 번쩍 안은 채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우야, 할아버지한테 과자 드려.”
세살 된 딸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과자를 집어 할아버지 손에 건넨다. 그러면 아버지는 손으로 과자를 받아서 입가로 가져가 드신다. 손녀가 주는 새우깡을 받아서 먹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적 장날마다 껌을 사다주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한 손으로 주머니를 오래오래 뒤적여 껌을 꺼내주시던 모습이. 아버지도 내게 껌을 사다 주시던 일을 기억하고 계실까.
목뼈를 다친 지 1년 2개월이 되어가지만 아버지는 아직 일어나 앉으시지 못한다. 의사는 환자가 일어설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도 아버지는 과자를 쥔 손을 들어올리시고 계신다. 아버지가 들어올리는 건 단지 가벼운 과자가 아니다. 바로 일어설 수 있다는 내일의 희망이다.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나는 아버지가 일어서는 그 날까지 딸아이 손에 과자를 사서 쥐어줄 것이다. 아버지와 딸아이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려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어려서 화상으로 엉겨붙은 아버지의 오른손과 다쳐서 반쯤 마비가 된 아버지의 왼손을 마주잡습니다. 아버지는 두 손에 무엇을 쥐고 싶으실까요.
/ 오마이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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