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성큼 다가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모든 사람들의 희망의 계절이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사건들을 접하면서 너무나 홍수같이 쏟아지는 부정부패로 온통 봄기운을 덮는 듯 답답함을 느낀다.

시장에 걸려있는 간판만큼 제도와 법률과 규약 안에 모두 갇혀있는 것 같다. 무슨무슨 게이트, 무슨무슨 사건들이 하도 많으니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헷갈리기도 한다.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각자의 양심들은 어디로 가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힘을 갖기 위해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다들 적대시하며 살아간다.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하루종일 피땀 흘려 단돈 몇 만원 벌어 성실하게 사는 아름다운 삶들이 우리 주위에 많기는 한데…

가진 것 많지 않아도 그것을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아름다운 인심도 얼마든지 있다. 각기 나름대로의 지식과 상식, 그리고 전문인으로서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앎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건만 모두들 자신만을 위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유행가 가사에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누가 잘난 사람이고 누가 못난 사람일까. 많이 가진 자, 많이 배운 자가 잘난 자일까. 그리고 가진 것 부족하고 아는 것 없고 힘과 권력이 미약한 자가 못난 자인가.

아니다. 세상은 누구나 공평한 삶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온갖 비행이 만연해 우리들을 불안하게 한다. 많이 가진 자, 많이 아는 자들마저 불안해진다.

체험에 비추어 보면 이웃하여 있는 사람들이 불안하면 덩달아 불안해진다. 이 현상이 너와 내가 하나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안한 사회적 모습을 보면서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부자와 도둑이 있었는데 부자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도둑질의 원인제공자는 그 부자라는 논리이다.

사람 각자에게는 본래 선한 마음이 다 있다. 조금만 잘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세대는 양심들이 너무 무뎌진 것 같다. 하느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창세기 1장 27절)… 그렇다. 우리는 분명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사람이기에 정의와 진리를 벗어나면 불안하게 되어 있다.

또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이란 내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며, 원수도 조건없이 사랑하며 함께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고 인간적인 뜻을 이루어 출세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향기가 없는 꽃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 밝은 사회, 더 희망적인 사회, 더 살맛나는 사회를 우리 모두는 바라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가진 것 모두가 그 분이 주신 에너지임을 깨달아 가진 것을 나도 모르게 나누고 싶어지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조물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는 것, 베푸는 것이 기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