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운
'건축사사무소 예감' 건축사
본지 편집위원
얼마전 신문에서 백남준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플럭서스(FLUXUS)로 백남준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난 그 플럭서스가 궁금해졌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주변에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위 예체능(지적인 유희나,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를 일컫는 나만의 표현방법)에게 물어 보면 답이 빠를 뻔 했다. 운동이기도 했던 플럭서스는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고, FLUX의 라틴어 였던 것이다. 즉, 자유로운 표현과 행동주의, 고급예술에 반대하지만 대중적인 유행과 같은 것은 아닌 그런 경향들로 설명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이성적이고 엘리트적인 패러다임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도전을 받았다. 이후 다변화된 이즘들 속에서 절대적 가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그럴 때까지 우리에겐 문화적 충격이 있어왔고 큰 어려움 없이 겪어냈다.
어느 사회에나 늘 포텐셜 현상 속에 키네틱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potential- 새로운 시도나 경향으로의 표출보다 자체 내의 체계 및 질서를 순화, 정리, 정립, 보존 또는 유지하려는 현상. kinetic- 기존의 보존된 질서 또는 체계를 지양, 반대 또는 파괴하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새로운 질서 또는 체계를 모색하려는 돌파구를 원하고 충족시키려는 현상).
신이 중심에 있던 중세에 인권과 인본주의가 새로운 키네틱원으로 출현하고 이어 그 키네틱원이 (르네상스라는 인본주의) 강력한 포텐셜원으로 역할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주기성을 띄기도 한다.
백남준의 그것은 예술은 늘 고매하고 젊잖은 것이라고 여기는 한국적 정서에 좋은 충격이라고 본다.
그것이 익숙할 때 쯤이면 우리는 좀더 다양하고 다변화된 틀을 마련하는 것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마련되는 것 이다. 그것은 우리를 한껏 확대시킬 것이다.
건축쪽을 이야기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당진에 조금은 형태주의적 작품이 나타나기를 또한 기대한다.
지역사회로서의 큰 장점이 있다. 전통과 미풍양속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변화는 큰 문제다. 보수적 성향이 그것이다. 여기에 시민운동과 단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도 있다. 지금 보수든 개혁이든 인적 자원이 부족한 이곳에서 그런 말이 있음직하다.
그러나 건강한 시민운동과 단체는 그것이 좀 거칠거나 또 파격적이어도 사회를 다변화시키고 사고의 틀을 확대시킬 수 있는 플럭서스이며 키네틱원이 아닌가.
만일 그들이 없는 당진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잘 다듬어지고 또 그들에 의해 건강한 에너지가 발현될 때 우리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도덕과 보수와 개혁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때이니 만큼 그들의 노력이 요구될 시점이다. 건강함이 지켜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