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면천면 문봉리 이모씨가 자신의 배추밭에서 애써 키운 배추를 포기당 80원 ‘똥값’에 팔며 울 때 옆마을 당진읍 읍내리 김모씨는 똑같은 그 배추를 시장에서 5백50원에 사며 주머니를 울려야 했다.
똑같은 배추를 놓고 이런 극단적인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농산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생산자에겐 너무 싸고, 소비자에겐 너무 비싼 비정상적인 농산물가격문제는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지에서 100원 하는 배추가 최종소비지에서 700~800원, 심지어 1,000원까지 한다는 얘기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상황을 지배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으로 주객이 전도된 ‘유통구조’때문이다.
배추파동의 파고가 높을 때마다 빠짐없이 얘기되어온 것이 바로 배추의 유통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배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농산물에 해당되는 숙제이기도 했다.
이미 알고있다시피 배추의 유통단계는 최소한 6~7단계나 된다. 따라서 생산자→산지수집상→도매시장·경매→도매상→소매상→소비자로 오는 동안 가격의 7~8배, 많게는 10배 뛰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이런 복잡한 다단계 유통구조가 생산자·소비자 모두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은 뻔한 일이며 지난 93년에는 ‘농안법파동’을 둘러싸고 이 문제가 본격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이후 달라진 점이 없다고 보고 있다.
가락동 도매시장의 관리공사는 여전히 서울시 퇴물관료의 낙하산 인사의 대상이며 도매법인은 수수료만 챙겨 유통비용의 증가에 일조하고 있으며 중매인은 중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매행위를 하여 또다시 수수료를 올린다. 이러한 도매시장내의 구조적인 문제로 애꿎은 유통비용만 증가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국농민회가 가락동 도매시장의 강제경매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박영범 총무부장은 “이것은 유통의 단계를 간소화하기 이전에 ‘유통’에 대한 올바른 정의(定意)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비로소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유통이란 생산과 소비의 결합’이며 그 ‘주체는 오로지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자가 산지가격 결정권 및 도매시장까지의 수집단계 전반을 장악해야하며 소비자는 최소한의 유통마진만 붙은 가격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위에서 박씨는 농협등 생산자협동조합을 통해 산지유통이 주도되고 또한 소비자협동조합을 통한 주민자치 소비구조와 도농직거래로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자치단체 소관으로 도매시장이 마련되어 산지집하·저장·가공시설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주장이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거대한 유통이익집단에 의해 유통이 주도되어 생산자·소비자가 다같이 피해를 보는 유통구조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옆동네에서 생산된 배추도 가락동 도매시장의 강제경매를 거쳐 10배 가까이 가격이 올라 다시 지방으로 내려오는 유통구조. 최근 각 농협마다 도시직판장이나 자매결연 도시농협을 통해 배추를 직거래하는 모습에서 이 고질적인 유통구조가 개혁될 희망을 발견한다면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