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사상 최고의 가치로, 풍류 아는 정감있는 마을

거산 삼거리에서 국도를 따라 합덕쪽으로 가다 보면 당산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꺾어져 포장도로를 따라 2km정도 들어가면 아담한 마을이 하나 있다. 바로 우강면 원치리이다. 삽교천으로 이어지는 공포리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야트막한 둔덕들이 굴곡을 이루고 있는 사이사이에 모정, 원재, 효댁골, 정착지 등의 자연부락들이 자리잡고 있는 원치리.

이곳에서는 113가구 500여명의 주민들이 벼와 상추, 마늘, 토마토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신평면과 접해있는 마을이라 행정적인 지원도 뜸하다는 이곳, 그러나 원치리 주민들은 그들 스스로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활기차고 인정넘치는 공동체 마을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효도마을, 장수마을이라 불리는 원치리

“저희 마을은 예로부터 효도마을, 장수마을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65세 이상 노인이 120여 분이나 되죠. 효댁골이라는 부락 이름도 효자가 많은 마을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 마을엔 샘이 하나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효심이 충만해 샘을 깊게 파지 않아도 저절로 물이 솟아 나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황진철(42세) 이장의 말이다. 실제로 이 마을에선 노인들에게 해마다 효도관광을 시켜드리고 있다. 얼마전에는 인근 세류리 노인들까지 초청해 성대하게 경로잔치를 베풀기도 했다고.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경로효친사상의 계승을 활동지표로 삼고 있는 청년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마을과 달리 원치리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45세 미만의 청장년층이 40여명이 있는데 이들은 자활청년회(회장 김근섭. 42세)라는 모임을 만들어 마을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해 나간다. 외부의 도움없이 자주적으로 활동한다는 뜻에서 자활청년회라 이름붙인 이 모임에서는 폐품수집이나 상가집에서 일을 해주고 마련한 자금으로 이러한 일들을 해왔다고 한다.

또한 부녀회(회장 우명숙)의 활동도 활발하다. 동네 부역일은 물론 노인회의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와 음식장만을 도맡아 하는 등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명무실 했었다는 원치리 부녀회가 지금은 우강면에서 모범적인 활동으로 이름난 부녀회가 됐다.

‘모정농악’으로 유명한 풍류마을

원치리의 중심 부락인 ‘모정마을‘은 농악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도 ‘모정농악’이라 하면 풍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한다. 비록 70년대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운동의 구호에 파묻혀 쇠퇴했지만 흥겨웠던 농악놀이를 보면서 자란 이 마을 청장년들이 쉽게 고향을 등지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마을 잔치날이나 명절때는 말할것도 없고 모를 심다가도, 벼를 베다가도 풍물놀이를 했었어요. 아낙네들도 풍물소리가 들리면 그 장단에 맞춰 보리쌀을 일다가 다 흘려보내 가난하게 살았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죠”

‘모정농악’을 얘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모정농악대의 상쇠였던 박헌욱(13년전 작고) 선생이다. 인간문화재이기도 했던 그는 우리나라의 농악 1인자로 손꼽혔는데 말년엔 합덕중학교와 서야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초가집 없애랴 마을길 넓히랴 바쁘기만 했던 70년대에 ‘모정농악’은 가난을 가져온 주범(?)이 되어 점차 쇠퇴해 갔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모정농악’은 주민들을 끈끈하게 엮어주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고 다시 ‘모정농악’을 살려보자는 움직임이 마을 안팎에서 일고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 지정문화재가 있는 마을

원치리의 자랑거리는 그외에 또 있다. 바로 93년 충남도 문화재 330호로 지정된 「위례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을 출신인 한갑동 시인이 소유하고 있는 「위례장」은 80년전 한 시인의 조부가 행정구역 폐합후 면천군에 있던 고을 원님집의 자재를 옮겨다 지어놓은 고택이다.

위례장의 주변에는 현재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될 이 공원은 문화재 관리비로 도에서 나온 예산과 한갑동 시인이 사재를 털어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머지 않아 완공돼 푸른잔디와 나무가 심어진 정원과 연꽃이 떠다니는 연못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또한 위례장 안마당에 있는 창고는 민속자료관으로 개조할 계획이다. 문화교육에 소외되었던 농촌 어린이들에겐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강국민학교에 장학재단도 설립했다는 한갑동 시인의 고향사랑의 일환이다.

“농촌을 너무 동정적으로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농촌이 무너지면 나라도 발전할 수 없어요.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렇지만 순수한 인정만큼은 잃지 않고 살아가야 겠지요”

50년만에 돌아온 고향에서의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는 한갑동 시인의 말이다.

살아있는 농촌, 정감있는 마을로 가꾸기 위해

몇십년 전만해도 바닷물이 밀려와 고깃배가 드나들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원치리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기도 하다. 청운의 꿈을 안고 배타고 인천으로 유학갔던 학생들이 지금은 장성해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굳혀가고 있단다.

그들도 마을회관에 모여 공부하던 시절, 신명나던 농악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치리를 지켜가고 있는 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러한 미풍양속과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이어져 나가길 바라고 있다.

“모정농악을 다시 일으켜 볼 생각입니다. 지금도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미약하나마 가르치고는 있어요. 효댁골 샘도 복원해 낼 계획입니다. 그리고 마을문고를 만들어 아이들이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게 하고 예절교육을 통해 경노효친사상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농촌, 정감있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각오 하나로 4년째 이장일을 맡아온 황진철 이장은 욕심만큼 다부진 포부를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