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민주주의 훈련하는 장

두산종합식품 당진공장 노동조합(위원장 안효권. 이하 두산노조)은 올해로 창립 네돌을 맞는다.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창립 이듬해인 92년과 93년 두번의 파업투쟁을 계기로 관내 어느 노조보다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높아진 저력있는 노조이다.

두산노조는 또한 젊은 조직이다. 조합원 수는 60여명으로 적은 규모이지만 30대 초반의 젊은 조합원들이 주축이다. 그래서 패기있고 더 한층 높은 고지에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원당리 두산종합식품 당진공장내 사원 휴게실 옆에 위치한 노조사무실은 잘 꾸며진 서재 같았다. 벽 한면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700여권의 장서들과 가지런히 정돈된 신문과 잡지들, 큰 탁자와 책상, 비록 낡았지만 컴퓨터 한대도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 붙은 노총의 임투결의대회 포스터와 노동가요 가사가 적힌 대자보, 그리고 진한 매직냄새가 늘 보고하고 알릴 게 많은 노조의 사무실이란 걸 느끼게 했다.

“조합원들이 하루에 한번씩 꼭 사무실에 들를 수 있도록 자잘한 일들도 많이 합니다. 담배를 팔고, 동전을 교환해주고, 탁구공을 빌려주는 일까지 하죠. 이 도서도 대출용입니다. 도서구입비를 매월 책정해 조합원들의 주문에 따라 신간을 구입하죠”

올해로 2년째 두산노조를 이끌어 가고 있는 안효권 위원장의 말이다.

단결은 곧 노조에 대한 신뢰감과 소속감에서 비롯된다. 조합원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의 편의를 돌보는 것을 안위원장과 간부들이 비중있게 추진해 나가는 ‘사업’으로 여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두산종합식품의 노동자 수는 전체 150여명이다. 이들중 사무직과 일용직을 제외한 나머지 낙농지도팀, 생산팀, 품질관리팀, 환경설비팀의 노동자 60여명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곧잘 휴게실내 탁구장에서 팀별대항 탁구대회를 열기도 하고 한여름의 수박파티, 통돼지파티 등이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침체되었다거나 사기가 떨어졌을 때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행사들이다. 조합 자체내 경조사 제도가 비교적 잘 되어있고 조합원 상당수가 같은 지역출신들이라 가족적인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격월간으로 조합활동과 노조에 대한 조합원 교육이 실시되고, 매월 노조 간부집행회의에서는 다양한 조합원들의 고충이나 요구사항들이 상정돼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논의된 사안들은 곧 경영진과 노조간부가 함께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에서 최종논의 된다.

그러나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경영진의 주장은 ‘요구는 많고 형편은 어렵다’는 것. 비교적 온건한(?) 두산노조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을 제시하고 타협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한다.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제조업은 아직 경기가 활성화 되지 못했습니다. 두산우유의 경우 후발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인지도도 아직 낮은 편이구요. 회사 형편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요. 때문에 무작정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함께 대책을 고심하고 수준에 맞는 타협을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회사와 노조는 공존공생의 관계이니까요”

작년 임금협상은 그래서 평화적으로 타결됐다. 물론 조합원들의 이해와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조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열악한 편입니다. 더욱이 인근 철강단지에 비해 임금이 낮다보니 인력누출현상이 우려되고요. 근로조건개선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올해도 원칙은 평화적 타결이지만 작년보다는 좀더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조합원 교육의 내실화를 비롯해 문화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것도 임금협상 못지 않게 안위원장이 강조하는 것이었다.

“경영자들은 그들이 고유권한이라고 말하는 인사권과 경영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몸 하나 뿐이죠. 일 개인으로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지만 모여서 조직을 이루었을 땐 그것이 곧 최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면서 좀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는 거죠”

안위원장의 말은 여러가지 뜻을 담고 있다. 노조는 단순히 집단 이기주의를 관철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잃었던’권리를 되찾고 무기력한 개인에서 힘있는 주인으로 거듭나는 장이라는 것. 그 속에서 이웃을 돌아보게 되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훈련의 장이 바로 노조라는 것이다.

“상근을 하다보니 자꾸 나태해 지는것 같아 걱정””이라는 안효권 위원장. 그의 밝은 미소에서 몸 하나 뿐이지만 최대의 무기인 단결된 조직을 갖고 있는 두산노조 조합원들의 건강한 의식과 강인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